본래의 나 41

정신적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정신적인 상처(트라우마), 마음에 생긴 상처에서 벗어나기 마음에 생긴 상처에는 시간이 약이 될 수 없다. 1. 마음에 생긴 상처를 들여다보자. 정신적 상처도 육체적 상처와 마찬가지다. 마음에 난 사소한 상처는 대충 넘어갈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시간이 약이 될 수 없다. 오히려 그냥 방치할 경우 상태가 악화되기 쉽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신적인 상처를 받으면 그 상처를 회피하려 하거나 무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신체적 외상과 마찬가지로 정신(마음)에 생긴 상처도 일단 자세히 들여다보고 증상을 정확히 진단해야한다. 중요한 것은 상처를 마음속에 숨겨두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으로부터 상처가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업장(業障)은 드러나야 그 업장을 다룰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에 생긴 트라우마를 관찰하..

왜 진정한 나(본래의 나)를 확인해야만 하는가?

왜 진정한 나(본래의 나)를 확인해야만 하는가? 우리들이 세상을 살면서 먼저 꼭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진정한 나를 똑바로 확인하고 똑바로 아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의 삶의 목표는 행복(幸福)해지고 편안(便安)해지는 것입니다. 행복(幸福)해지고 편안(便安)해지 위해서는 올바른 길로 올바르게 가야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올바른 길이 아닌 딴 길로 잘못 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행복(幸福)해지고 편안(便安)해지기 위해 올바른 길을 올바로 가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그것은 진정한 나를 똑바로 확인하고 똑바로 아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이 영원토록 행복(幸福)하고 편안(便安)합니다. 진정한 나를 똑바로 확인하고 똑바로 알지 못하면 행복(幸福)과 편안(便安)을 이 세상 하늘 끝까지 샅샅히 찾아봐도..

가슴에 맺힌 응어리가 풀릴 때...

◈ 가슴에 맺힌 응어리가 풀릴 때...◈ - - 우룡스님 불가(佛家)의 가르침(敎), 즉 불교(佛敎)는 절 법당에 모셔진 불상으로서의 부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 모든 것들, 우리들 스스로가 본래 이미 완벽한 부처님임을 확인하는 가르침입니다. 만약 우리들 스스로가 부처님임을 확인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가슴에 맺혀있는 응어리가 떨어져나가야 합니다. 기슴에 맺혀있는 응어리는 두고 두고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죽을 때까지 응어리를 갖고 가서 내생까지도 그릇되게 만들어버립니다. 죽음(死)과 내생(來生)! 불교에서도 가장 문제로 삼는 것은 죽음입니다. 죽음.. 우리에게는 죽음이 오지 않을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가 반드시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죽은 다음의 ..

한 물건(一物)

한 물건(一物) 여기에 한 물건이 있으니 본래부터 밝고 신령스럽다. 한 물건은 일찍이 생긴 것도 아니요 일찍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라 이름을 지을 수도 없고 모양을 그릴 수도 없다. 有一物於此 從來以來 昭昭靈靈(유일물어차 종래이래 소소영영) 不曾生不曾滅 名不得相不得(부증생부증멸 명부득상부득) 『선가귀감, 청허 휴정 서산대사』 여기에 한 물건이 있다. 이 한 물건이 있어서 이렇게 글도 읽고 글을 쓴다. 이 한 물건이 말도 하고 말 하는 것을 듣기도 한다. 이 한 물건이 누가 부르면 대답할 줄도 하고 꼬집으면 아픈 줄도 안다. 이 한 물건은 배가 고프면 밥을 먹을 줄도 알고 피곤하면 잠을 잘 줄도 안다. 이 한 물건은 정말 밝고 신령스럽다. 이 한 물건은 참으로 신기한 물건이다. 이 한 물건은 참으로 불가사의..

‘마음을 비운다’ 는 건 망상 환상이다.

‘마음을 비운다’ 는 건 망상 환상이다. 분별 망상 번뇌가 있다고 해서 ‘마음을 비운다’ 하는 건 환상이다. 마음은 본래 버릴수 없는 조강지처와 같은데 어찌 버리겠는가? 생각은 백두산 천지에 있는 물처럼 끊임없이 솟아나기 때문에 생각을 비우는 건 불가능하다. 알면 안다, 모르면 모른다,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등등 진실한 그대로 할 뿐인 거기서 뭘 비우고 말고 하겠는가? 좋다고 하고 싫다고 하는 걸 표현한 마음자리는 좋은 것도 싫은 것도 아니다. 생각을 냈기 때문에 좋다, 싫다 하는 분별심이 일어나는 것일 뿐이다. 좋은 것(善)을 지키려면 계속 싸움해야 된다. 좋은 것(善)에는 상대적으로 나쁜 것(惡)이 따라온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에 자기는 선(善), 상대는 악(惡)이라고 끝없이 싸우는데 그런..

진아(眞我), 참나, 본래의 나, 진짜 나, 깨달음, 진심(眞心), 진리, 도(道)란 추구해야 할 목표가 아니다.

진아(眞我), 참나, 본래의 나, 진짜 나, 깨달음, 진심(眞心), 진리, 도(道)란 추구해야 할 목표가 아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을 구속하는 뭔가가 있고 그래서 자유를 찾게 된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진실로 진정으로 사람들을 구속하는 뭔가는 없으며 자유만이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왜 억지로 이름, 개념, 관념을 만들어 내서 그 이름을 추구하고 있는가? 진아(眞我)란 추구해야지만 얻어지는 목표가 아니라 에 대한 제한적인 생각들이 떨어져 나가기만 하면 스스로 저절로 드러나는 각성(覺性)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기만 하면 된다. 진아(眞我), 참나, 본래의 나, 진짜 나, 깨달음, 진심(眞心), 진리, 도(道)를 깨닫는다고 하더라도 그 깨달음으로 어떤 새로운 세상을 얻게되는 것도 아니고 또한 삶의 질(質)이 몰라보..

신심(信心)이란 어떤 마음을 믿는 것인가?

신심(信心)이란 어떤 마음을 믿는 것인가? 신심(信心)은 어느 마음을 믿는다는 것인가? 진심(眞心), 본성, 불성, 청정심, 본래의 나, 진짜 나를 믿는다는 말이다. 진심을 믿지 못하는 신심이 없는 사람은 ‘정말 내가 깨달을 수 있을까?’, ‘진심을 믿어서 그렇게 해서 깨닥게 될까?’, ‘금생에 될까?’, ‘십년 하면 될까?’ 이런 의심을 한다. 그러다가 ‘뭐 이렇게 살다 죽으면 그만이지, 이렇게 해야 되나’ 하고 불신하고 안 한다. 일체 모든 중생이 고통의 바다에서 진정한 편안함과 진정한 행복을 모르고 사니까 “진정한 편안함과 행복이 어디에 있는 줄 아느냐? 너가 가만히 '나는 무엇인가' 돌이켜 보라는 선지자의 말씀 거기에 다 있다.” 하는 그 말을 믿어야 되는데, 사람들이 고약해서 선지자의 말을 안 ..

선(禪)과 삶

선(禪)과 삶 / 인각스님(범어사) 선(禪)이라는 말을 두고 참선(參禪), 참선 하는데, 선(禪)은 누구도 가리켜 주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누구에게 가르쳐 줄 수도 없는 것이 선(禪) 입니다. 내가 직접 음식을 먹어야 음식 맛을 알고 내 배가 부르듯이 누가 나를 대신해서 먹어 줄 수 없는 것이 음식입니다. 선(禪)공부 이 마음공부도 내가 꾸준히 해서 이루어야 합니다. 또한 인생도 그렇습니다. 인생살이도 혼자오고 혼자 가지 누구도 동행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애지중지 키워주고 아무리 닦아주고 아무리 잘 보살펴줘도 누가 나와 같이 인생길을 갈 수는 없습니다. 인생길에서는 오직 혼자입니다. 혼자 가는 이 길목에서 스스로 꿈을 깨지 않고는 그저 외롭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세상의 바른 이치을 터득해서..

잠이 덜 깬 아침의 잠꼬대

잠이 덜 깬 아침의 잠꼬대 - - 몽지&릴라 바로 지금 당장 여기서 너무나 자명해서 어떠한 확인이나 증명도 필요가 없는 사실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머리를 굴리는가? 쯧쯧쯧, 그렇다면 화살은 이미 벌써 대마도를 지나갔다. 아마 당신은 지금 이 글을 보고 있을 것이다. 이 글을 보고 있다는 그 사실을 되돌려보아라. 억지로 말로 설명을 하자면 ‘보고 - 있음’을 자각해 보라는 말이다. 이 ‘보고 - 있음’, 이 ‘듣고 - 있음’, 이 냄새맡고 - 있음, 이 맛보고 - 있음, 이 ‘느끼고 - 있음’, 이 ‘알고 - 있음’, 이 ‘살아 - 있음’…. 이 영원 하고 무한한 불생불멸의 ‘있음’을 맛보고 자각하라. 이 ‘있음’을 맛보려는 그대와 그대가 맛보려 하는 이 ‘있음’은 불이(不二), 즉 분리된 둘이 아니다...

그저 그냥 순수한 환희와 기쁨만 존재한다.

그저 그냥 순수한 환희와 기쁨만 존재한다. 사람들이 갖고있는 두려움이라는 생각이 사람들로 하여금 남보다 특별해지도록 노력하게 만들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황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대의 에너지를 남보다 특별한 사람이 되는 데 쏟는 게 아니라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도록 모든 에너지를 쏟는 데 있다. 그저 진정한 자기 자신을 발견하라. 남보다 특별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면 할 수록, 그대는 진정한 자기 자신, 본래의 나, 진짜 나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이같은 사실을 분명히 자각하는 게 중요하다. 사람들이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부터 멀리 달아날수록, 사람들은 진정한 자신이 불멸(不滅)의 존재이며 죽음은 결코 없다는 진리를 알 수 있는 가능성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