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스크랩] 1. 관찰자로부터 독립적인 객관적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장백산-1 2011. 8. 24. 15:06

 

 

 

1. 관찰자로부터 독립적인 객관적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실재라고 받아들이는 세계는 딱 꼬집어 말할 수 있는 성질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떤 물건은 크고 어떤 것은 작고, 어떤 것은 단단하며 어떤 것은 부드럽다. 그러나 이 중의 어떤 성질도 우리 자신의 인식을 벗어나서는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한다. 예컨대 접는 의자와 같은 어떤 물체를 가정해 보자. 우리에게는 그 의자는 그리 큰 것이 아니다. 그러나 개미에게는 그것은 어마어마하게 크다. 우리에게는 의자가 단단해 보이지만, 중성미자(neutrino)는 그 속을 거침없이 지나갈 것이다. 왜냐하면 아원자(亞原子) 입자에게는 의자의 원자들이 서로 수 마일씩이나 떨어져 있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의자가 가만히 놓여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만약 당신이 외계의 어느 지점에서 그것을 본다면 의자는 지구상의 모든 것들과 함께 돌면서 시속 수천 마일의 속도로 우리의 눈앞을 지나갈 것이다. 마찬가지로 단지 인식을 바꾸기만 함으로써 우리가 의자에 대해서 묘사할 수 있는 다른 어떤 성질도 완전히 바꾸어 놓을 수가 있다. 예컨대 의자가 붉은색이라면 초록색 안경을 쓰고 봄으로써 검은색으로 보이게 할 수도 있다. 만일 의자의 무게가 2.5킬로그램이라면 그것을 달 위에 가져가 1킬로그램도 채 안 나가게 만들 수도 있고, 아니면 밀도가 큰 행성의 중력장 속에 가져다 놓음으로써 수십만 킬로그램의 무게로 만들 수도 있다.


물질세계에서는 절대적인 속성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저 밖에’ 어떤 독립적인 세계가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부터가 잘못된 일이다. 우주란 그것을 감지하는 감각기관의 반영일 뿐이다. 인간의 신경계는 우주 속에 진동하고 있는 총 에너지의 10억 분의 1도 안되는 지극히 미소한 부분만을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다. 박쥐나 뱀과 같은 다른 동물들의 신경계는 우리의 세계와 공존하고 있는 또 다른 세계를 반영한다. 박쥐는 초음파의 세계를 감지하며, 뱀은 적외선의 세계를 감지한다. 두 세계 다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진정으로 ‘저 밖에’ 존재하고 있는 것은 다만 인식자인 우리가 해석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정형화되지 않은 원시 데이터뿐이다. 우리는 우리의 감각을 사용하여, 물리학자들의 말하는 ‘지극히 불명확하고 멀건 양자의 수프’를 굳혀서 3차원의 고형 우주를 만드는 것이다. 영국의 뛰어난 신경학자인 존 에클스(John Eccles) 경은 다음과 같이 놀랍지만 반박할 수 없는 단언으로써 감각이라는 환상을 통찰하고 있다. “나는 여러분이 자연의 우주에는 어떤 색깔도, 어떤 소리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색깔이나 소리와 비슷한 것, 즉 직물, 문양, 아름다움, 향기 등등의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단히 말해서, 우리가 현실의 기반으로 삼고 있는 어떤 객관적 사실도 본질적으로는 무효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혼란스럽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이 속에는 ‘단지 당신의 인식을 바꾸기만 함으로써’ 당신의 우주 - 당신의 몸을 포함한 -를 당신이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믿기지 않는 해탈이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몸 속에서 엄청난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미국과 영국에서는 65세에 맞게 되는 정년퇴직이 제멋대로 한 사람을 사회에 더 이상 쓸모가 없는 인간으로 만들어 버린다. 65세가 되기 전날까지만 해도 한 직장인은 노동과 가치로써 사회에 기여하지만 그날 이후로 그는 사회의 피부양자가 된다. 의학적으로 이러한 인식적 전이의 결과는 비참하다. 퇴직이후 몇 년 동안에 심장마비와 암의 발병률이 치솟고, 퇴직하기 전에 건강했던 사람들이 조기에 죽음을 맞는다. 소위 ‘조기은퇴성 사망’이라는 이 증후군은 자신이 더 이상 쓸모가 없는 존재라는 인식에 기인한다. 이것은 단지 하나의 인식일 뿐이지만 그것을 굳게 믿는 사람에게는 질병을 일으키고 사망하게 만들기 충분하다. 비교한 바에 의하면, 노년층이 사회의 어엿한 구성원으로서 받아들여지는 사회에서는 노인들이 지극히 원기왕성하다. 그들은 미국의 노인네들로서는 정상적으로 할 수 없는 굽히기, 들기, 오르기 등을 거뜬히 해낸다.


간의 표피세포와 같은 오래된 세포를 고배율 현미경으로 살펴보면, 그 광경은 마치 전쟁터처럼 황폐화되어 있다. 섬유질이 이러 저리 얽혀 있고 지방질 노폐물과 처리되지 않은 순환노폐물이 보기 흉한 덩어리로 엉켜 있다. 리포푸신(lipofusin)이라 불리는 암황색 색소가 세포내부의 10 내지 30퍼센트까지 축적되어 더럽혀져 있다.


이 황폐한 광경은 아세포 기능의 이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물질적인 렌즈가 아니라 정신적인 렌즈로 들여다보면, 이 오래된 세포들이 마치 그 사람의 경험이 기록된 지도와 같음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즐거움을 가져다 준 일들과 함께 우리를 괴롭힌 일들이 거기에 각인되어 있다. 의식 층에서는 오랜 전에 잊혀진 일들이 마치 감춰진 컴퓨터 마이크로칩처럼 여전히 외부로 신호를 보내어 우리를 초조하게 하고 긴장하게 하며 지치고 근심스럽고 후회스럽고 의심스럽고 실망스럽게 만든다. 이러한 반응들은 심신의 경계막을 넘나들면서 우리의 일부가 된다. 오래된 세포 속의 독성 노폐물 덩어리들이 누구에게나 같은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유전적인 차이가 거의 없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이 나타난다.

 

 

70세에 이를 즈음이 되면 당신의 세포는 독특한 형태를 띠게 될 텐데, 그 형태는 당신이 자신의 신체조직과 내장기관에 대사작용으로 변화시키고 처리시킨 독특한 경험을 거울처럼 반영하는 모습이 될 것이다. 혼돈스럽고 거칠게 진동하는 ‘양자의 수프’를 다루어서 의미 있고 질서 있는 현실의 단편들도 만들 수 있게 되면 무한한 창조의 가능성이 열린다. 그러나 이러한 가능성은 오직 당신이 그것을 알고 있을 때에만 존재한다. 당신이 이 책을 읽고 있는 동안에도, 당신 의식의 거의 대부분이 당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몸을 만들어 내는 일에 종사하고 있다. 소위 자율신경계는 당신의 의식을 빠져나간 기능들을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가 멍한 상태로 길을 걸어가더라도 뇌 속의 자율신경 중추는 여전히 위험한 순간을 살펴서 긴장반응을 발동시킬 태세를 갖추고 외부세계에 대처하고 있다. 우리가 의식하지 않는 가운데 수많은 일이 행해지고 있다. 숨쉬고, 소화시키고, 새로운 세포를 키우고, 손상된 오래된 세포를 고치며, 독성을 순화시키고, 호르몬의 균형을 유지하며, 지방을 혈당으로 바꿈으로써 저장된 에너지를 변환시키고, 눈동자의 조리개를 조절하고, 혈압을 높이고 낮추며,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걷는 동안에 균형감각을 유지하고, 가장 많은 일을 하고 있는 근육으로 혈액을 보내 주고, 주변의 소리와 움직임을 감지하는 등의 일이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 자율적인 과정이 노화현상에 아주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 나이가 먹어갈수록 이러한 기능들을 조절하는 능력이 떨어져 가는 것이다. 한평생 무의식적인 생활을 이어가면 수많은 노후작용이 일어나고, 한평생 의식적으로 활동하면 노화를 예방할 수 있다. 신체의 기능을 자동운전 상태로 내버려두는 대신에 의식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행위, 그 자체가 당신이 어떻게 나이를 먹느냐에 변수가 될 것이다. 심장박동과 호흡으로부터 소화와 호르몬 조절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른바 자율기능들은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가 있다. 바이오피드백(biofeedback)과 명상의 시대가 우리에게 이것을 가르쳐 주었다. 여러 가지 일 중에서도, 예컨대 심신건강 연구실에서는 심장질환자가 의지로서 혈압을 내리거나, 위궤양 환자가 위산의 분비를 줄이는 훈련을 받고 있다. 이러한 능력을 노화현상에 활용하지 못할 이유가 있겠는가? 구태의연한 인식을 새롭게 바꾸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앞으로 알게 되겠지만, 우리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자율신경계에 영향을 미치는 기법은 얼마든지 있다.

 

 

출처 : 행복창조의 커뮤너티! 美플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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