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스님의 날마다 해피엔딩

마음관찰 수행은 '監視'하는 것이 아닌 '구경'하는 것

장백산-1 2014. 8. 22. 00:53

 

 

 

[목탁소리] 마음관찰 수행은 '監視'하는 것이 아닌 '구경'하는 것|불교방송 원고모음




요즘 마음觀察 修行이 그야말로 시대를 이끄는 大勢로 떠오른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마인드풀니스(mindfullness)라고 하여 心理, 相談, 治癒 쪽에서도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마음챙김 冥想을 基盤으로

하는 심리치유가 대세인 듯하다. MBSR로부터 시작하여, MBCT DBT ACT 등 요즘 심리상담의 제3세대 심리학의 방향이 마음챙김으로부터 촉발되었다. 제가 어떤 심리치유 교육을 받으러 가 보았더니, 이 곳이 위빠사나 수련원인지 심리치유 상담소인지를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마음챙김이 세계적인 마음치유의 흐름으로 자리잡은 듯 싶었다.


이러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말 그대로 마음을 治癒하기 위해, 또 삶을 變化시키기 위해, 幸福해지기 위해

마음챙김이라는 마음觀察 修行을 그 修段으로 사용하는 듯 보인다. 그래서 마음챙김이 잘 되고, 마음이

잘 觀察되는 날에는 마음관찰 修行을 잘 했다고 여겨 行福해하고, 화에 휩쓸리거나, 온갖 生覺과 煩惱 妄想에

휩싸일 때는 마음관찰 修行을 잘 못 했다고 여기면서 괴로워하곤 하는 것을 본다.


마음챙김이라고 하는 마음관찰 修行이 또 하나의 手段이 되고, 걸림이 되고, 觀念이 되고 있는 것이다.

마음관찰 修行은 마음이 幸福해지기 위한, 혹은 平和로와지기 위한 하나의 手段이 아니다.


마음관찰 修行은 그저 지금까지 우리가 해 오던 수많은 幸福해지기 위한 努力과 手段과 方法, 理論과 槪念들로부터 벗어나는 수행이다. 아니 벗어난다는 말 또한 하나의 作爲的인 努力이니 그 말도 맞지 않다. 그저 지금까지 계속

우리가 쌓고 쌓아왔던 수많은 觀念 槪念과 煩惱 妄想과 도그마, 論理를 세우는 行爲와  전혀 다른 方向의 수행이다.


우리의 텅~빈 본바탕을 本來面目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主人公, 佛性, 一心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 텅~빈 본바탕 자리는 마음을 닦아서 얻는 것도 아니고, 마음으로 노력해서 얻는 것도 아니며,

特別한 手段이나 方法을 동원해서 깨닫는 것도 아니다. 마음관찰 修行 또한 이름이 마음관찰 修行일

固定된 實體가 없는 마음챙김일 뿐이지, 마음관찰 修行에 이르는 특별한 방법을 두고 마음관찰 修行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다.


마음관찰 修行은 그저 지금까지 우리 意識이 造作하고, 槪念짓고, 相을 짓고, 妄想하고, 努力해 오던

모든 努力과 分別들을 그저 하지 않는 것에 불과하다. 쌓고 만들고 分別하던 努力을 그저 멈추는 것이다.

그러니까 마음관찰 修行은 지금까지 하던 것을 그저 하지 않음에 불과하다. 이것은 또 다른 努力이나 行爲가 아니다.


그렇기에 마음관찰 修行은 잘 하고 못 하고가 없다. 觀 修行을 하라고 하니 많은 사람들은 오늘 하루 내가 修行을

잘 했나 못했나를 分別하면서, 잘 한 날과 못 한 날을 나누고, 잘 하면 칭찬해주고 못 하면 스스로를 비난하곤 한다. 마음관찰 修行, 마음챙김, 위빠사나는 우리더러 監視者가 되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 自身을 監是할 아무런

理由가 없다. 마음관찰 修行은 오히려 監視者가 아닌 구경꾼이 되는 것에 더욱 가깝다. 監視者는 잘 하는지

못 하는지를 끊임없이 監視해야 한다. 또한 監視하려면 잘 하는지 못 하는지에 對한 基準이나 準據 틀이 있어서,

거기에 잘 들어맞는지 그것과 맞지 않는지를 끊임없이 判斷하고 斷罪해야 한다. 그러나 구경꾼은 그저 이완된

便安한 마음으로 아무런 判斷도 없이 그저 마음을 즐겁게 구경만 하면 된다. 그저 바라보고 즐기면 되는 것이다.


구경하는 자는 흡사 旅行者와 비슷하다. 여행자는 여행지에 있는 모든 낯선 환경이나 삶의 방식들에 대해

監視하거나 判斷할 필요가 없다. 그저 낯선 환경과 삶의 방식에 대해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며 구경만 하면

된다. 그러나 監視者는 잘 하고 있는지 못 하고 있는지를 계속해서 監視해야 한다.

마음관찰 修行은 곧 낯선 삶을 구경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저 일어나는 모든 일들, 모든 마음에 대해 아무런 判斷도 하지 않고, 잘 한다거나 못 한다거나 是非를 걸지 않고, 斷罪하지 않고 그저 바라보면 된다. 한 발자국 떨어져서,

저 언덕 위에 올라 저 아래에서 벌어지는 삶의 모습들을 그저 구경하기만 하면 된다.


지금까지 우리들은 마음관찰 修行을 잘 하려고 애써왔다. 마음챙김을 스스로 잘 하는지 못하는지를 監視해 왔다.

그러나 이제 監視者로써의 마음챙김과 관찰을 모두 便安하게 내려놓고, 그저 便安하게 바라보는 구경꾼이 되어 보라.

 

[BBS 불교방송 라디오 ‘법상스님의 목탁소리’(월~금, 07:50~08:00)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