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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탄 집터엔 풀만 무성..방치된 제주 4·3유적지

장백산-1 2017. 4. 2. 22:22

경향신문

불탄 집터엔 풀만 무성..방치된 제주 4·3유적지

글·사진 박미라 기자 입력 2017.04.02. 21:50



[경향신문] ㆍ‘4·3’ 69돌 ‘잃어버린 마을’

제주 다랑쉬굴은 4·3 사건 당시 주민 11명이 집단희생을 당한 곳이지만 현재 안내판만 있을 뿐 입구는 수풀에 가려 흔적도 찾기 힘들다.

1948월 12월18일 제주 하도리와 종달리 주민 11명은 초토화 작전의 광풍을 피해 다랑쉬굴로 숨었다. 9살 난 아이, 여자들도 있었다. 진압군은 굴을 찾아내 입구에 불을 피웠고 주민들은 질식해 사망했다. 굴이 공개된 것은 그로부터 44년이 지난 1992년. 굴 내부에서는 11구의 유골과 함께 항아리와 솥, 물허벅 등 다량의 유물이 발견됐다. 참혹하게 몰살당한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제주 4·3사건 당시 은신자에 대한 무분별한 학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하지만 어떤 영문인지 유해는 서둘러 수습됐고 동굴 입구는 유물을 남겨둔 채 커다란 돌로 봉쇄됐다. 다시 25년이 흐른 지난달 28일 제주시 구좌읍에 있는 다랑쉬 굴. 곳곳에 설치된 표지판 덕분에 다랑쉬굴까지 가는 길은 비교적 어렵지 않았다. 다랑쉬굴로 가는 길은 2~3분 거리의 용눈이오름과 다랑쉬오름이 관광객으로 북적거리는 것과 달리 인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한적했다. 차에서 내린 후 밭과 밭 사이 100m가 채 안되는 비포장길을 걸으니 다랑쉬굴이 있음을 알리는 표지판이 수풀이 가득한 곳을 가리켰다. 수풀 속에는 당시 상황을 설명한 안내판 2개만이 황량하게 서 있었다. 안내판을 꼼꼼히 읽은 후 주변을 둘러봤지만 무성한 수풀과 돌무더기 속 다랑쉬굴의 입구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화북동에 있는 곤을동도 군인들에 의해 마을 주민이 사살되고 집이 불타 집터와 돌담만 남아 ‘잃어버린 마을’이 됐다.

제주공항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또 다른 4·3유적지 화북1동 서쪽 바닷가 옆 산비탈에 허리 높이의 돌담이 얼기설기 있다. 지금은 흔적만 남긴 채 사라진 4·3 당시 ‘잃어버린 마을’이다. 1949년 1월4~5일 국방경비대 제2연대 1소대는 마을 사람 10여명을 바닷가로 끌고가 학살하고 60여가구 모두를 불태웠다. 마을은 이후 재건되지 못했고 집터만 남았다. 이곳은 제주시 도심에 위치해 접근성이 좋은 데다 올레 18코스의 하나로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써 그 어느 유적지보다 활용도가 높지만 입구 초입에 설치된 안내판이 전부다. 이를 지나치면 4·3유적지라는 것조차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제주도는 2005년 주요 4·3유적지 19곳에 대한 정비계획을 수립했지만 정비가 완료된 곳은 7곳이다. 2010년 이후 4·3유적지 정비에 대한 정부 지원이 끊기면서 지방비만으로는 속도를 내지 못했다. 제주도 관계자는 “유적지가 대부분 사유지라 쉽지 않다”며 “올해 유적지보존위원회를 구성했고 다양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제주 4·3사건은 1948년 4월3일을 전후로 1954년 9월21일까지 제주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 간 무력충돌, 그 진압 과정에서 다수의 주민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주민 2만5000~3만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2000년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통과됐고 2003년에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을 시인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공식 사과가 있었다.

<글·사진 박미라 기자 mr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