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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제(2) - 괴로움이 왜 성스러운 진리일까?

장백산-1 2024. 9. 7. 15:58

고성제(2) - 괴로움이 왜 성스러운 진리일까?


석가모니 부처님은 중생들이 현실세계를 괴로워하며 살고 있음을 통찰하셨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괴로움’이라는 현실관찰에 대해 ‘성스러운 진리’라고 하셨을까? 그것은 바로 현실이라는 삶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통찰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불교의 목적은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괴로움이 있기에 괴로움으로부터의 해탈도 있다. 해탈과 열반, 깨달음을 설하기에 앞서 지금 현 상황을 있는 그대로 살펴, 괴로워하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그 현실 위에서 괴로움의 해결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밝혀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괴로움이라는 현실 통찰은 성스러운 진리가 아닐 수 없다. 진리 탐구의 첫 번째 시작이기 때문이다.

우리 삶의 목적은 귀의(歸依)에 있다. 불법승(佛法僧)에 귀의한다는 것은 곧 내 근원인 부처와 진리와 수행자의 성품으로 되돌아가 의지한다는 것이다. 삶이란 괴로움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를 통해 배우고 깨달아 나감으로써 결국에 귀의를 완성하는, 곧 나온 자리로 되돌아가는 삶의 여정이다.

그런 점에서 괴로움은 겉으로 보기에는 고통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우리는 괴로움을 통해서만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는 간절한 마음을 낼 수 있다. 이것이 발심(發心)이다. 괴로움이 있어야 괴로움에서의 해탈도 가능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괴로움이 ‘성스러운 진리’인 이유다.

사람들은 행복할 때는 절을 찾지도 않고, 수행이나 기도를 하지 않다가, 괴로운 일이 생기면 기도나 수행에 관심을 가진다. 이처럼 괴로움은 사람들을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게 만든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를 사바세계(娑婆世界), 인토(忍土), 감인토(堪忍土)라고 하는데, 참고 인내하는 세계라는 뜻이다. 괴로움을 참고 인내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그 괴로움이 우리에게 주려고 했던 보배로운 지혜가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도 ‘괴로움’은 ‘성스러운 진리’가 아닐 수 없다.


글쓴이 :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