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7109

이상기온은 지구 절규 기후위기 방관…인류 무너져

해인사 희랑대 감원 경성 스님 “일상서 ‘두타행’ 실천하면 무소유 · 소욕지족 삶 영위해 ”동국대 계율 전공 박사취득 해인사 · 범어사 등서 정진 값비싼 옷 · 집 · 음식 욕심 털어내면 ‘나만의 행복 ’깨달음의 성취 안주 지양, 자비로 구현될 때 가치 좋은 직장 · 높은 연봉 받으면 배려 · 양보심 더 키우며 보시세계 이상기온은 지구 절규 기후위기 방관…인류 무너져 우주법계 생명·사물 ‘부처’ 물·바람도 제소리로 법설“ 모든 존재는 위엄 · 신통 구족 한 존재 나의 몸짓 · 언어로 법 전해야” 해인사 희랑대 감원 경성 스님은 “깨달음을 성취한 경계에 안주한다면 참된 깨달음이라 할 수 없다”며 “이 또한 자비를 구현하는 과정이어야 한다”고 전했다 의상(義湘) 스님으로부터 본격화된 신라의 화엄학(華嚴學)은..

우주자연과 나는 불이(不二)

우주자연과 나는 불이(不二) - - 혜국 스님 나는 혼자서 살수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만의 힘에 의지하여 살수있는 존재도 아닙니다. 이 우주자연 속에 있는 인간을 비롯해서 모든 것들과 함께 살수있고 살아가는 존재가 '나'입니다. '나'와 우주자연(宇宙自然)과의 관계는 불이(不二)입니다. 불이(不二)는 분리된 둘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우주자연이 나의 주인이 되고, 내가 우주자연의 주인이 되는 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불이(不二)라합니다. 우주자연 속의 공기(空氣)를 예로 들어 봅시다. 공기가 없으면 나는 단 한순간도 살수 없습니다. 호흡을 통하여 우주자연의 에너지인 공기를 넣어주기 때문에 나는 생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우주자연 속의 땅(地), 물(水), 태양열에너지..

세계 기원 묻는 질문에 붓다가 침묵한 진짜 이유

세계 기원 묻는 질문에 붓다가 침묵한 진짜 이유 세계 안에서 세계 경계 대해 논하는 자체가 성립되지 않아 불교 세계관은 무시무종…서로가 원인 결과되는 열린 체계 중중무진의 인연생기가 생명 실상이고 그 장이 바로 우주 ‘최초’에 대한 관심은 신화나 종교에서만이 아니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세계를 형성하는 인과관계의 매트릭스 바깥에 있는, 최초의 시작이 되는 어떤 형이상학적 존재를 상정하여 이를 제1원인 혹은 ‘부동(不動)의 동자(動者)’[unmoved mover]라는 개념을 제안하였다. 이 개념은 이후 서양 중세 철학에서 기독교의 초자연적 유일신관을 정당화하는 개념으로 차용되기도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초자연적 신적 존재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의 시작, ‘최초’..

‘불변의 나’가 있다고 느끼는 건 뇌의 기본모드신경망 때문

8. 자아 VS 오온 ‘불변의 나’가 있다고 느끼는 건 뇌의 기본모드신경망 때문 신경세포는 변하지 않지만 신경세포를 연결하는 신경회로는 변해 이처럼 변하는 신경회로가 쌓여 ‘기억’ 만들고 ‘나’라는 서사 만들어 서사가 있는 뇌의 기본모드신경망에서 ‘나’라는 정체성(假我) 형성됨 인간은 자신이 세상 안에서 ‘나’ 밖의 세상과 분리된 하나의 개체로서 존재한다는 자각을 한다. 세월이 흘러 육체도 마음도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를 일관되게 지속되는 동일체로 착각한다. 그것이 세칭 나의 정체성(identity)이다. 나를 구성하는 물질적 정신적 요소들이 바뀌었는데 어떻게 나의 정체성이 유지될까? 과연 ‘변하지 않는 나’는 존재하는 것일까? 붓다는 변하는 이 세상 모든 것은 괴로움(苦, ..

극락도 지옥도 모두 자신의 생각이 만들어 낸 허상(虛像)에 불과

극락도 지옥도 모두 자신의 생각이 만들어 낸 허상(虛像)에 불과 지금 지옥의 고통에 사는 건 자신의 업이 만든 결과일 뿐 안락은 비움서 생겨…비우지 않으면 원하는 것도 못 얻어 살아가면서 돌이켜 비춰보고 살펴볼 때 비로소 길이 보여 봉선사 전 주지 정수 스님은 “옛 스님들이 ‘안락을 얻는 것은 비우는 데 있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비우지 않으면 결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오늘 의정부시에 있는 성불사 대웅전 낙성식에 동참을 하게 돼서 저 개인적으로도 매우 기쁩니다. 오늘 이곳에 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몇 년 전 성불사에 왔을 때는 쇠락한 사찰에 불과했는데 이렇게 달라져 있을지는 정말 몰랐습니다. 여법한 도량이 만들어진 것을 함께 기뻐하기 위해 종단을 대표하는 많은 스님들과 의정부 ..

7.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 - 묘행은 머무름이 없음)

7.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 - 묘행은 머무름이 없음) 계를 지킨다는 마음에도 머물지 않는 것이 참으로 계 지키는 것 보시를 한만큼 복덕을 기대한다면 또 다시 인과에 떨어져 무주상보시는 공한 단멸이 아니라 무량한 복덕으로 귀결 계를 지키는 것은 선 행하는 것 아니라 선악 분별 않는 것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인도 룸비니 동산.[법보신문DB] 하이고 약보살 부주상보시 기복덕 불가사량(何以故 若菩薩 不住相布施 其福德 不可思量) 왜냐하면 만약 보살이 상에 머물지 않고 보시(布施)한다면 그 복덕은 가히 생각으로는 헤아릴 수 없느니라. 세존께서 수보리에게 육바라밀법(六波羅蜜法)을 행하되, 육바라밀법에 머물지 말고 행하라 하셨다. 보시를 한다는 것에 마음이 머문다면, 보시하는 이와 보시를 받는 이의 두 분별이 생기는 것..

어리석음의 뇌신경회로

문일수의 붓다와 뇌과학 7. 어리석음의 뇌신경회로 어리석음의 뇌신경회로 기본모드신경망에 똬리 틀고 삼업 불 지펴 탐욕 · 분노가 뇌의 원초적 기능이라면 어리석음은 뇌의 고등기능 학습한 지식 대뇌에 저장되듯 어리석음도 기본모드신경망에 스며 일상에서 망상 등은 자동 재생산된다 …그것이 ‘싸띠’를 강조하는 이유 맨 오른쪽은 기본모드신경망(DMN)의 모식도이다. DMN은 삶과 더불어자아(ego)를 형성하지만 ‘어리석음[癡]’도 함께 스며드는 뇌신경회로다. 탐욕[貪]과 분노[瞋]는 인간의 뇌 깊숙한 곳에 자리를 잡은 뇌줄기(뇌간, 腦幹, brainstem)와 둘레계통(변연계통, 邊緣系統 limbic system)에서 생겨난다. 뇌줄기는 파충류의 뇌(reptilian brain)이며, 둘레계통은 하등포유류의 뇌이다..

내면(內面)의 빛

내면(內面)의 빛 엄마 자궁에 있는 태아(胎兒)는 빛으로 가득 차 있다. 그 빛은 내면(內面)의 빛(광채)이다. 그러나 태아가 다 자라 자궁에서 나와 유아(乳兒)가 되면 유아는 감았던 눈을 뜨고 세상, 색깔, 빛, 사물, 사람들을 보게 되면서 서서히 세상을 보는 틀이 갖춰진다. 유아는 점점 자라 아이가 되면서 아이는 내면의 빛을 보던 것을 잊고 점차 세상에 관심을 갖게 된다. 아이는 세상에 너무나 반한 나머지 서서히 자신의 내면의 빛을 보던 것를 망각하고, 결국 자신의 내면의 빛을 못보게 된다. 그러면 그대는 명상을 통해서 자신의 내면의 빛의 원천과 자신을 재결합(再結合)해야 한다. 마치 세상이 사라지고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세상을 잊고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서, 내면과 조율해야 한다. 적어도 하루에 한..

니르바나(열반/해방/자유)

니르바나(열반/해방/자유) 붓다는 세상에는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 세상 모든 것은 비영속적이고, 세상 모든 것은 매 순간 항상 변하고 있다. 그대가 이같은 사실을 터득하게 되면 그대는 해방(니르바나/열반/자유)를 누리게 될 것이다. 명심하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해방(니르바나/열반/자유)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들은 자아(自我)를 위한 해방을 이야기한다. 붓다가 해방에 대해 말할 때, 붓다는 자아(自我)로부터의 해방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붓다의 해방은 대단히 급진적인 입장이다. 붓다가 말하는 해방은 그대가 해방되는 것이 아니라, 그대 자신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붓다가 진정한 자유라고 말하는 유일한 자유는 그대 자신으로부터의 자유( 해방/니르바나/열반)이다. 그대 자신으로부터의 자유( 해방..

6. 친근(親近)한 불상과 친원(親遠)한 불상 : 친원감의 미학 - 하

6. 친근(親近)한 불상과 친원(親遠)한 불상 : 친원감의 미학 - 하 가까운 게 멀어지고 먼 게 가까워지는 역설적 감응 친원감은 평온한 시선 · 다정한 미소가 주는 친근감과 대비 ‘상 없는 여래를 봄’은 불상과 눈 맞추고 교감할 때는 발생 안 해 눈 맞춤이 어긋난 시선은 주체화하는 시선이길 그치고 상대에 응답 불상의 반개한 눈, 내리깔린 시선은 얼굴에서 방사되는 기호와 의미를 지우고 거기 실려오던 명령문을 침묵 속에 묻는다. 서산 마애불(왼쪽)과 수월관음도(오른쪽). 반개한 눈으로 시선을 내리깐 불상은 명령어를 발송하기를 그치며 침묵 속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침묵하는 불상은 침묵의 거리만큼 내게서 멀어진다.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아득히 먼 거리 저편에 있다. 나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결코 나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