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고통 절망을 버리지 말라
은 이들이 무언가로 인해 괴로워한다. 어떤 이는 미워하는 사람 때문에 괴롭고, 또 어떤 이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괴롭고, 진급 못할까봐 괴롭고, 사랑 받지 못할까봐 괴롭고, 외로움 때문에 괴롭고, 인정 받
지 못해서 괴롭고, 죄책감에 시달려서 괴롭다.
그 어떤 종류의 괴로움이 오더라도, 사실은 그 나를 찾아 온 괴로움 그 자체 그 자리에 답이 있다.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딛고 일어나라는 말처럼, 바로 그 괴로움 속에서 답을 찾아야지 그 괴로움이 싫다고 괴로
움을 버리고 저멀리 새로운 행복을 찾거나 기다려서는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煩惱卽菩提(번뇌즉보리), 生死卽涅槃(생사즉열반)이라고 한다. 반야심경에서는 색즉시공이라고 했다.
내가 괴로워하는 바로 그 괴로움, 번뇌, 생사심 바로 그 마음이 곧 깨달음의 자리이고, 번뇌가 꺼진 열반
의 자리라는 것이다. 번뇌즉보리이기 때문에, 괴로움이 일어났을 때 바로 그 괴로운 마음 자리에 同時에
괴로움이 사라진 깨달음과 행복의 마음 자리도 함께 하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보통 괴로운 일이 생기면,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쓴다. 불안하면 불안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쓰고, 외로우면 외로움에서 벗어나려고 사람을 찾아 나서고, 미움이나 원한에 시달릴 때면 그 미움
을 버리고 용서와 사랑을 찾으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지금 여기’에서 나를 찾아 온 바로 그 괴로움, 외로
움, 불안, 미움을 버리고 새로운 행복, 충만감, 사랑, 안정, 용서 등을 찾으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오히려
괴로움과 불안은 더욱 더 커질 뿐이다.
번뇌가 찾아 온 이유는 번뇌즉보리를 일깨워주기 위함이다. 사실은 번뇌 속에 보리가, 괴로움 속에 행복이
함께 하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가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괴로움에서 벗어나려고 애
쓰는 그 마음을 포기하고, 오히려 나를 찾아 온 괴로움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괴로움과 함께 있어주는 것이다.
괴로움이 올 때 괴로움과 하나 되어 충분히 괴로워해 주고, 불안감이 몰려올 때 그 불안감을 없애려
할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충분히 받아들여 함께 불안해 주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밉고 원망스러울 때도 미워하면 안 된다고 자신을 책망하며 용서하지 못하는 자신을 원망할
것이 아니라 밉고 원망스러운 마음을 인정해주고 도닥여주며 내 마음 안에서 충분히 미워하고 원망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미워하면 안 되, 미워하지 말자 하고 그 마음을 억누를 때 오히려 더 미워지고 더 화가 나게 된다. 남들을
미워하면 안 된다는 죄의식이 오히려 더욱더 미움을 증폭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미움이라는 에너지가 내
안에서 충분히 발산되도록 해 주어 보라. ‘어디 한 번 마음껏 미워해 주자’ 하는 마음으로 미운 마음 그 자
체를 받아들여 줄 때, 그래서 충분히 그 미움이 나래를 펴고 미움으로 발현될 때 오히려 미움은 머지않아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나를 찾아와 나를 괴롭히는 그 마음을 없애려 하지 말고 그것과 함께 있어 주라.
불안감을 마음껏 불안해 해 주고, 외로울 때 온전히 외로움 속으로 뛰어들어 외로워해 주며, 미울 때도
미운 마음을 억누르지 말고 마음 속에서 진정으로 100% 온전히 미워하는 마음을 인정하고 허락해 주어
보라.
번뇌즉보리, 즉, 괴로움, 불안, 고독, 미움 바로 그 힘겨운 번뇌의 마음이 곧장 깨달음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그 괴로운 마음과 하나되어 온전히 괴로움을 받아들여 줄 때 도리어 놀라운 내적인 전환을 겪게 된다. 내면
에서 근원적인 변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진흙 속에서 피는 연꽃처럼 진정한 변화는 번뇌 속에서 피어나는
것이다. 괴로운 그 마음을 버리고는 결코 따로 행복한 마음을 찾을 수는 없는 것이다.
[BBS 불교방송 라디오 평일 오전 07:50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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