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회고록, 욕하고 넘길 일 아니다
장신기 입력 2017.04.03. 20:11
[오마이뉴스 글:장신기, 편집:장지혜]
▲ 전두환 전 대통령(오른쪽)은 6·29 선언을 준비할 당시 노태우 전 대통령이 자신에게 '직선제 개헌을 건의할 테니 크게 노해 호통치는 모습을 보여달라'고 요구했었다고 증언했다. 전 전 대통령은 지난 3월 30일 연합뉴스가 단독 입수한 『전두환 회고록』2권 '청와대 시절'에서 6·29 선언 비화를 소개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사진은 1987년 6월 전두환 대통령이 힐튼호텔에서 열린 축하연에서 민정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노태우 후보를 축하해 주는 모습. |
ⓒ 연합뉴스 |
2일 보도가 크게 화제가 된 것은 광주항쟁에 대한 그의 입장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회고록 서문에서 자신을 '광주사태 치유를 위한 씻김굿의 제물'에 비유하고 양민 학살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부인했다.
그는 끝까지 후안무치했으며 이로써 그는 국민들에게 용서를 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완전히 걷어차 버렸다. 이것이 바로 많은 사람들이 크게 분노하는 이유다.
그런데 언론에 소개된 전두환 회고록의 주요 내용을 보면 이 사안 못지 않게 매우 심각한 문제점이 또 있다. 그건 독재 정권이 한국의 민주화 발전에 기여했다는 식의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필자는 이 주장이 5.18 관련 발언만큼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고 판단한다.
사실 5.18 관련 전두환의 주장은 매우 일방적이며 대다수 보수세력 내에서도 인정받지 못한다고 볼 수 있다. 전두환의 발언은 광주항쟁의 상처를 다시 한 번 들춰낸다는 점에서 매우 악질적이지만, 그의 발언을 통해서 역사적 평가가 달라지는 일은 없다.
그런데 두 번째 사안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 전두환의 이 주장은 뉴라이트 역사관과 궤를 같이 하며 보수 세력 일반의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그만큼 이 주장은 전자(5.18 관련 발언)와 달리 보수 세력 내부와 더 나아가 그 외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무게감이 있다.
특정 진영의 역사관이 반영되어 있다고 해서 문제가 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객관적 접근과 진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두환은 이 부분에서 매우 큰 오류를 범하고 있다.
군사 독재 정권의 성과가 민주화에 기여했다고?
전두환이 저렇게 말한 이유는 다음의 두 가지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하나는 자신(전두환)이 한국의 민주화를 억누르고 탄압했다는 일반적인 시각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려는 것이며, 또 하나는 자신(전두환)이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한국 보수 세력의 가장 큰 약점으로 지적되는 것은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인권을 탄압했다'는 것이다. 경제발전의 성과를 인정한다고 해도 이 부분의 과오는 그 자체로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이 비판론자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이에 대해 보수 세력의 대응은 보통 두 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인권을 탄압한 것은 문제였지만 이것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로 경제발전을 이룩했기 때문에 권위주의 정권의 역사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우다. 이와 같은 태도는 소극적이며 방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다르게 적극적이면서 공세적인 형태로 대응하는 경우가 있다. 이 주장의 논리는 이와 같다. 우선 한국이 처한 여건을 보았을 때 그 당시 군사 권위주의 정권은 필요했다고 본다. 그리고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서는 경제 성장과 발전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군사권위주의 정권이 이 역할을 했으므로 결과적으로 군사 독재 정권이 한국 민주화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는 논리다.
보수 세력의 대응 태도를 보면 2004년 뉴라이트 세력 등장 전후로 접근 태도에 차이가 나타난다. 뉴라이트 이전 시기를 보면 보수 세력 내에서는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대응이 주를 이뤘다. 그런데 뉴라이트 등장 이후부터 후자의 시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전두환의 시각은 이것과 매우 닮아 있다.
보수 세력의 역사관, 기능론적 환원론의 오류
한국의 독재 정권이 민주화에 기여했다는 논리는 얼핏 보면 상당히 그럴 듯 해보인다. 그래서 이 논리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현혹되기 쉽기 때문에 이 논리는 보수 세력 외부에서도 일정 정도 통용될 정도다. 그런데 이 논리는 기능론적 해석이며 두 가지 차원에서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다.
첫째, 기능론적 접근은 환원론을 통한 결과중심적 해석을 한다는 점에서 문제다. 환원론으로 접근하면 시간 순서상 뒤에 나타나는 특정 현상(결과)의 원인을 설명하는 데에 있어서 그 이전에 있던 현상이 모두 관련되어 있다는 식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먼저 있었던 일은 뒤에 나타나는 현상을 위해 특정한 역할을 했다는 방식으로 설명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모두 기능적으로 유의미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목적론적이고 결과중심적인 해석이다.
둘째, 기능론적 접근은 가치 해석을 무력화시킨다. 우리가 아는 역사는 대립하는 여러 역사적 주체들의 각축 과정 속에서 형성된 종합적인 결과물이다. 그래서 특정 국면에서 다양한 역사적 주체들의 의도와 역할을 섬세하게 구분하지 않고 역사적 결과를 전체로 받아들이고 이해하게 되면 해당 역사적 주체에 대한 실질적인 평가가 어려워지게 된다.
그런데 기능론적 접근은 대상과 대상 사이의 기능적 역할의 연관성에만 초점을 맞춘다. 이렇게 되면 역사적 주체의 의도, 여러 주체들 사이의 경합 속에서 구성되는 역사적 과정과 맥락에 대한 분석은 시야에서 사라지고 각 대상 사이의 기능적 역할이라는 덩어리만 남게 된다. 이렇게 되면 역사적 주체의 의도에 대한 가치 평가는 하기 어렵게 되고 무의미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설명하게 되면 특정 역사적 사실에 대한 긍/부정의 가치 평가가 무의미해진다. 이런 논리는 직설적으로 말하면 '좋은게 좋은거다'라는 식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여기서 이 문제는 독재의 문제점을 은폐하는 효과를 낳는다. 이것을 회고록의 실제 사례를 통해서 살펴보자.
전두환, 그는 민주화에 기여한 바 없다
전두환은 '평화적 정권이양'을 마치 자신의 업적인 것처럼 내세우고 있는데, 이것은 위와 같은 오류가 나타난 역사왜곡이다. 간선제에 의한 7년 단임으로 출범한 전두환 정권에 맞서 민주화 세력은 '직선제' 개헌을 요구했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전두환 정권의 대응은 1987년 4.13 호헌조치였다.
그리고 이에 분노한 국민들이 대대적인 반 전두환 투쟁에 나섰고 이것이 6월 항쟁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보면 당시 민주화 이행이 평화적인 방식으로 귀결될 수 있었던 것은 국민적 항쟁에 의해 직선제 개헌이 이뤄졌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전두환은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다. 명백한 역사 왜곡이다.
그리고 전두환이 경제적 성장과 민주화를 연결시키는 부분은 보수 세력의 일반적 인식을 그대로 보여주는데, 이 논리는 자기 합리화에 불과하다. 이 논리대로 하면 본격적인 산업화가 이뤄지기 전에 발생한 1960년 4.19 혁명을 설명할 수 없다.
4.19 혁명은 한국 민주화 운동에 있어 큰 의미가 있다. 특히 미소 냉전에 따른 대립이 심했고, 한국은 전쟁을 끝낸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 때였다. 그런 상황에서 민주 혁명으로 이승만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4.19 혁명은 한국 민주화에 있어 매우 중요한 가치를 갖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산업화가 이뤄지기 전에 발생한 것이다.
그러므로 경제성장을 민주화의 선행조건인 것처럼 설명하면서 독재 정권의 업적을 강조하는 것은 지극히 결과중심적인 해석이다.
또한 이 논리는 지극히 편파적이다. 한국에 있어 독재에 의한 산업화가 민주화의 필수적 선행 조건이라는 주장을 입증하려면 비교를 위한 실험군과 대조군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실험실과 달리 역사에 있어서는 검증을 위한 이와 같은 조작이 가능하지가 않다.
물론 산업화에 따른 경제적 발전은 민주화의 진전에 긍정적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그러나 여기에도 두 가지 따져볼 지점이 있다. 경제발전에 있어 권위주의 통치자의 기여를 어느 정도 볼 것인가 하는 점, 두 번째는 기본적으로 한국의 권위주의 통치자들은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인식이 매우 결여되어 있었고 이것를 위해 노력한 주체는 한국의 민주화 운동 세력이라는 사실이다. 그렇게 볼 때 전두환의 저 주장은 매우 무리가 있다.
적폐 중의 적폐는 바로 뉴라이트 이데올로기의 잔재
필자가 앞에서 설명했듯이 한국의 보수 세력들이 '민주주의와 인권' 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이면서도 공세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은 2004년 뉴라이트 등장 이후부터다. 그리고 이 뉴라이트 정치 세력은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서 몰락했다.
그러나 뉴라이트 세력의 이데올로기 잔재는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전두환이 오래 전부터 회고록을 준비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그가 지금 이런 주장을 하게 된 것은 뉴라이트 역사관에 고무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지금 적폐 청산이 시대적 과제로 제기되고 있는데 이를 위해서 알아야 할 것은 바로 2004년 뉴라이트 세력에 의해서 형성된 이데올로기 잔재에 관한 것이다. 필자가 전두환의 이 회고록 내용에 대해서 분노와 함께 치밀한 분석을 해야 한다고 판단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 글에서 다 다루지 않았지만 언론에 보도된 내용만 보더라도 '안보는 보수'와 같은 현재 뉴라이트 이데올로기의 대표적인 사안들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정치세력으로서의 뉴라이트는 끝났지만 이데올로기로서의 뉴라이트의 잔재는 아직도 강고하게 남아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만 한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뉴라이트 이데올로기가 진보 세력에 끼친 부정적 영향을 분석한 <진보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 - 반노무현주의, 탈호남 그리고 김대중 노무현의 부활>이라는 책을 최근에 낸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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