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김정은 · 트럼프, 역사를 바꾸는 정상회담을 바란다
입력 2018.03.09. 20:32
[경향신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제의를 받아들여 오는 2018년 5월 북 · 미 정상회담을 갖기로 전세계에 발표 했다. 북한의 최고지도자와 미국의 현직 대통령이 회담하는 것은 사상 처음이다.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로 북한을 방문했던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2018년 3월 9일 미국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조기에 만나고 싶다는 김정은 위원장의 메시지를 전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즉각 김 위원장의 북미정상회담 제의를 수용했다.
이로써 군사적 충돌 가능성마저 제기되던 한반도 정세가 일시에 평화 국면으로 전환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마련됐다. 적대국 간의 정상회담이 대체로 관계 정상화라는 결실을 맺어온 그간의 외교사에 비춰보면 이번 정상회담이 1950년 6월 한국전쟁 이후 65년 넘게 지속된 적대관계의 청산과 북 · 미 수교로 이어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외교적 사변’이라고 해도 좋을 긍정적이고 환영할 만한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 제의를 받아들인 것은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믿을 만하다고 평가했기 때문일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을 통해 향후 핵 및 미사일 실험발사를 자제하겠다고 약속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또 한·미 양국의 정례적인 연합군사훈련을 지속해야 한다는 점도 이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정은 위원장이 전격적으로 대화의 장애물을 치우자, 트럼프 대통령도 큰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북·미 정상회담은 2000년 빌 클린턴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때 추진됐다가 무산된 바 있다. 화기애애하던 18년 전과 달리 2018년 지금은 북한이 핵 보유를 선언한 데다 미 본토까지 도달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개발하면서 양측 간 긴장과 불신이 최고조에 달한 상황이다. 그런 만큼 두 정상의 만남은 상호불신을 해소해 가면서 비핵화와 관계 정상화,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해제 등 굵직한 사안들을 주고받는 ‘빅딜’의 프로세스가 가동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양측이 난제들을 충돌 없이 풀어갈 수 있을지는 낙관하기 어렵다. 하지만 두 지도자의 뜻이 확고하다면 한반도 현안을 일괄협상과 일괄타결 방식으로 풀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다.
이런 점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파격적이고 실용적인 태도는 놀랍다. 그는 남한의 대북특사단과의 면담에서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하면서 ‘대화가 계속되는 동안’이라는 조건을 달았지만 추가 핵실험 및 탄도미사일 발사를 재개하는 일이 없겠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하는 메시지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향후 어떠한 핵 또는 미사일 실험도 자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대화 분위기 조성을 위해 한국과 미국, 국제사회가 북한에 대해 품고 있는 우려를 말끔히 씻어내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2018년 신년사를 기점으로 시작된 북한의 태도변화는 단기적인 국면전환이 아니라 자신들을 둘러싼 안보환경의 큰 틀을 근원적으로 바꿔 정상국가로 나아가겠다는 큰 그림을 실행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제안을 머뭇거리지 않고 전격 수용한 점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청와대의 설명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정의용 실장이 김 위원장의 구두 메시지를 전하자 그 자리에서 즉시 “좋다. 만나겠다”고 수락했다. 트럼프는 대통령 후보 시절 “김정은과 햄버거를 먹으면서 협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집권 이후에는 ‘최대의 압박’에 치중하면서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군사적 수단도 배제하지 않겠다는 초강경 태도로 일관했다. 이런 호전적 태도가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맞물리면서 긴장을 최고조로 끌고 갔다. 하지만 북한이 대화 의지를 분명하게 드러내자 기회를 놓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외교가 없었다면 사상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 개최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트럼프가 정의용 실장이 들고 온 김정은의 메시지에 대해 즉시 수용 의사를 밝힌 뒤 면담 결과를 자신의 참모가 아닌 정 실장이 직접 백악관에서 발표하도록 한 것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트럼프의 깊은 신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5월 출범 이후 다양한 형태의 양자외교와 다자 정상외교를 통해 북·미대화를 성사시키기 위해 매진했다. 트럼프의 대북 강경 태도에도 굴하지 않고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법을 꾸준하게 설득해온 것이 결실을 맺게 된 셈이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열린 남북 간 대화 국면에서 김여정 특사와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을 상대로 장시간 대화를 통해 신뢰를 쌓았던 것이 김정은 위원장을 움직이게 한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된 냉전체제가 유일하게 잔존해 있는 지역이다. 북·미 정상회담은 한반도의 냉전질서를 해체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역사적인 기회가 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이 역사적 기회를 반드시 살려 큰 합의를 이뤄낼 것을 희망한다. 문재인 정부는 이번 정상회담이 차질 없이 이뤄질 수 있도록 중재외교에 만전을 기해줄 것을 당부한다. 중국, 러시아, 일본 등 한반도 주변국들이 남북 및 북·미대화를 지지하고 협력할 수 있도록 다자외교에도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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