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에 대해 갖고 있는 환상만 버리면 있는 그대로의 진실이 드러난다.
수행자들, 구도자들은 사실 깨달음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진정한 깨달음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 속에서 정의 내린 자기 식대로의 깨달음이 경험되기를 추구한다. 깨달음은 놀랍고 신비하며, 신비주의적이고 초월적인 어떤 것이라고 상상하는 사람은 그런 깨달음을 원한다. 이것은 진정 '깨달음'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 속에서 스스로 만들어 놓은 의식 속의 가짜 깨달음, 즉 깨달음을 가장한 자기가 만든 어떤 상태를 추구하는 것일 뿐이다. 물론 그 상태는 전혀 깨달음일 수가 없다. 어쩌면 그런 상태를 얻게 될 수도 있다. 의식 자체가 간절히 원하면 그것을 마땅히 보여주기도 하니까. 그러나 그것런 깨달음은 반드시 사라질 것이다.
삼매체험, 신비체험들은 전부 생사법일 뿐이기에, 생사법(생멸법)은 생겨나면 반드시 사라진다. 인연생 인연멸, 그것이 모든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들의 행로다. 그러면 또 추구하겠지. 언제까지? 죽을 때까지 생멸하는 것들을 추구하기만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추구는 성취될 수 없다. 생사법이기 때문에 그렇다.
참된 불법은 불생불멸법, 즉 생겨나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는 법이다. 불생불멸법 이것은 내가 상상하듯이 그렇게 신비롭지도 경이롭지도 않을지 모른다. 선사스님들은 불생불멸법을 '평상심'이라고 불렀고, 평상심을 깨닫는 것은 '세수하다가 코 만지는 것처럼 쉽다'고 했다.
내 생각 속에 만들어 놓은 깨달음에 대한 환상을 버리지 않는다면 생멸법만 반복된다. 그러면 공부는 끝나지 않는다. 그 모든 생각들을 다 내려놓고 나면, 이제 비로소 이 평범한, 이미 있었고, 언제나 있을, 늘 눈앞에 있는 이 아무것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진실이 드러난다.
있는 그대로의 진실이 드러난다고 말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진실은 드러난다고도 할 수 없다. 언제나 있었던 것이기에.
이 당연한 진실을 보고 싶은가? 그렇다면 내면에 켜켜이 쌓여 있는 생각, 상, 모양, 개념, 추구심, 분별심을 붙잡지 말라.
그러면 너무나도 쉽게, 문득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확인하게 될 지도 모른다.
글쓴이 :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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