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성 37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안 되고, 그렇다고 안 해도 안 되기에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안 되고, 그렇다고 안 해도 안 되기에 이 하나의 법은 사람들이 찾으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결코 찾아지지 않는다. 이 하나의 법을 보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더 멀어질 뿐이다. 그러나 이 하나의 법은 찾고자 하지 않는다고 해서 찾아지는 것도 아니다. 이 하나의 법은 찾아도 안 찾나지고, 그렇다고 찾지 않아도 안 되니, 이럴수도 저럴수도 없어, 발 딛을 곳 없이 꽉 막힐 뿐이다.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안 되고, 그렇다고 안 해도 안 되기에, 의식이 어찌 할 바를 몰라, 의식이 할 수 있는 것은 어디에도 없고, 오로지 의식으로서는 모를 뿐인 공부가 무위의 공부, 불성, 자성, 주인공, 일심, 한마음, 본래면목 등의 공부다. 이 하나의 법은 보려고 하면 볼 수 없지만, 보려고 하지 않..

법문을 들으면 들을수록 더욱 '모를 뿐'임이 분명해 집니다

법문을 들으면 들을수록 더욱 '모를 뿐'임이 분명해 집니다  제가 설법을 할 때나 글에서나 '모를뿐'이라는 말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마음 공부는 머리로 법문을 듣고 이해하는 공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점이 가장 중요합니다. 따라서 법문을 듣고 그 내용을 머리로 이해하고, 정리하고, 체계화하며, 내가 이해한 것을 바탕으로 불교 경전을 대입해 보아서 딱딱 들어맞을 때 느끼는 쾌감 같은 것을 마음 공부라고 여기면 안 됩니다.  허공에 도장을 찍듯, 마음 공부는 하되 한 바가 없어야 하고, 공부를 하지만 그 어떤 것도 붙잡아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좋은 법문일지라도 그것을 내 것으로 붙잡아 틀을 정해 놓고, 거기에 대입시켜 볼 어떤 기준점을 만들어 놓으면 안 됩니다. 방편으로 다양한 설법을 해..

다만 모른겠다는 그 마음이 곧 '이것'이다

다만 모른겠다는 그 마음이 곧 '이것'이다 분주무업 선사가 마조를 찾아왔다. 마조는 무업의 풍채가 좋고 목소리가 우렁찬 것을 보고 말했다. '몸은 으리으리한 불당인데, 그 속엔 부처가 없구나.' 무업이 마조에게 다시 물었다. '불교의 모든 가르침은 학문으로써 대강 살펴보았습니다만, 선에서 말하는 이 마음이 곧 부처란 말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마조가 대답했다. '다만 알지 못하는 그 마음이 곧 이것이다. 다시 다른 물건은 없다.' [마조어록] 중에서 불교는 자성, 불성, 본래면목, 열반, 해탈, 주인공, 참 나, 본지풍광 등 다양한 방편의 용어를 써서 법을 드러내 보입니다. 그러나 그런 방편상의 용어 속에는 '이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저 그냥 '이것'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이것..

지금 있는 그 자리가 다 진실하니(立處皆眞) 있는 그 자리에서 주인공이다(隨處作主)

지금 있는 그 자리가 다 진실하니(立處皆眞) 있는 그 자리에서 주인공이다(隨處作主) 어디를 가나 있는 곳마다 주인공이니(수처작주), 지금 있는 자리가 그대로 진실하다.(입처개진)... 만약 그대들이 태어나고 죽고, 가고 머무는 분별심, 생각에서 벗어나 자유롭고자 한다면, 지금 당장 법문을 듣는 그 놈을 알도록 하라. 그 놈은 모양도 없고, 뿌리도 없으며, 머무는 곳도 없이 활발발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지 않은가. [임제록] 임제록에 나오는 아주 유명한 구절입니다. 수처작주 입처개진, 있는 그 자리가 가장 진실하니(입처개진), 있는 그 곳에서 주인공이다 (수처작주) 라는 뜻입니다.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일 뿐, 다른 때 다른 곳은 없습니다. 진실하다는 말도 하나의 방편일 뿐, 그저 지금 여기 눈앞의 ..

승의제와 세속제

승의제와 세속제 석가모니부처 입멸 후 500여 년 경에 나가르주나라는 제2의 석가모니로 칭송된 나가루주나보살이 진리는 말로 설명될 수 없음을 세속제와 승의제라는 표현으로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진리라고 말하며, 절에서 말로 가르칠 수 있는 진리는 세속제, 즉 방편의 진리 밖에 없음을 강조한 것이다. 즉 진리는 말로 설명될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말은 의미가 담긴 언어이고, 사람들은 특정한 말에 자기만의 특정한 의미를 개입시킨다. 보편적인 의미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자기만의 특정한 의미와 개념이 담길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를 말로 설명하게 되면 그 설명은 어디까지나 진리 그 자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인식한 바의 상대진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를들어 불성, 법성, 참나, 마음, 법,..

너무 평범하고 당연해서 물같고 공기같은 '이것'

너무 평범하고 당연해서 물같고 공기같은 '이것' 공기는 너무 흔하고 당연해서 공기를 코로 들이마시고 내쉬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할 필요가 없고, 숨쉬는 것을 지속하기 위해 특별히 애쓸 필요도 없다. 물은 맛이 너무 맹맹하고 심심해서, 탄산음료나 커피 같은 마실 것들에 비해 별로 감흥을 주지 못한다. 이와같이 물이나 공기처럼, 존재에게 가장 핵심적인 것들은 심심하고, 있는 듯 없는 듯 하여 아무 것도 아닌 것 처럼 느껴진다. 깨달음, 자성, 불성, 진리라는 방편으로 회자되는 물같고 공기같은 '이것'도 비슷하다. '이것'은 너무 당연하고 특별할 것이 전혀 없어서, 아이러니하게도 더없이 특별하기도 하다. '이것'은 공기처럼 물처럼 늘 항상 곁에 있지만, '이것'은 생겨나거나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나아지거나 ..

부처란 다른 말로 마음이고 자비이다

부처란 다른 말로 마음이고 자비이다. 부처란 다른 말로 마음이고 자비이다. 부처 마음 자비는 사람 몸속에 있다. 사람들은 오래 미혹되어 있어서 마음이 부처인 줄 자비인 줄 모르고 자비를 부처를 마음 바깥에서 찾아 헤맨다. 이렇게 되면 티끌처럼 많은 세월이 지나도록 몸을 사르고 팔을 태우며 뼈를 부수어 골수를 꺼내고 몸을 찔러 피를 내어 경을 베낀다 해도, 밤을 지새우고 밥을 굶으면서 그 많은 대장경을 읽거나 여러 가지 고행을 한다 해도 이같은 수고는 모래알을 삶아 밥을 지으려는 것과 같아 헛된 수고일 뿐이다. 불성은 마음속에 있다. 사람은 마음을 잘 닦으면 누구나 佛性을 갖출 수 있고 극락에도 갈 수 있다. 부처 불성 자비 이것이 너희 마음 안에 있는데 스스로 이것을 자각하지 못할 뿐이다. 너희가 배가 ..

너무나 흔하고 너무나 평범해서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이것!

너무나 흔하고 너무나 평범해서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이것! 사람들이 숨을 의지하고 사는 공기는 너무 흔해서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쉬기 위해 그 어떤 노력을 할 필요도 없고, 공기를 지속시키기 위해 어떤 애를 쓸 필요도 없다. 물도 공기와 마찬가지로 물도 너무 흔하고 그 맛이 너무 심심해서, 탄산음료나 커피 같은 음료수에 비해 별로 특별한 맛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공기나 물처럼, 존재에게 가장 핵심적인 것들은 심심하고, 있는 듯 없는 듯 하며, 아무 것도 아닌 것 처럼 느껴진다. 소위 우리들이 말하는 깨달음, 자성, 불성, 진리라고 하는 이것도 공기나 물과 비슷하다. 너무 당연하고 특별할 것이 전혀 없어서, 아이러니하게도 더없이 특별하기도 하다. 깨달음, 자성, 불성, 진리라고 방편상으로 말하는 이것은 ..

2. 전전두엽과 불성, 그리고 수행

12. 전전두엽과 불성, 그리고 수행 누구나 갖춰진 불성(佛性이) 차이 있는 건 전전두엽의 차이 전전두엽 발달되면 지혜로움 발달해 반야지혜의 뇌로 발달 수행 한다는 것은 명품 반야지혜 전전두엽을 만들기 위한 것 전전두엽을 명품으로 계발해 번뇌의 불꽃 끄게 되면 ‘깨달은 자’ 인간이라는 셍명체는 다른 동물들과 차별화된 특별한 생명체다. 인간만이 고도로 발달된 언어능력이 있으며, 다양한 도구를 사용하여 엄청난 인류문명을 이루었다. 인간이라는 생명체의 특별함에는 기술적인 측면도 있지만 더 중요한 측면은 영성(靈性, Spirituality)이다. 인간이 만물(萬物)의 영장(靈長)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영성(靈性, Spirituality)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마음 속성으로, 이 마음의 속성을 불교에서는 불성(..

집착을 하는 마음을 버리는 방법이 아닌 방법

집착을 하는 마음을 버리는 방법이 아닌 방법 집착을 하는 마음을 버리려고 애쓰면 버려질까요? 아마 쉽게 잘 안 될겁니다. 집착을 하는 마음을 버리려고 애를 쓰는 것도 무엇을 하려고 하는 유위법(有爲法)에 해당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불법(佛法)은 무위법(無爲法)에 해당합니다. 무엇을 해야할 것은 아무것도 없고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 뿐인 것이 무위법(無爲法)이자 불법(佛法)입니다. 집착을 하는 마음을 버리려 애쓸 것이 아니라, 그저 또 다른 무언가에 자꾸만 집착을 하는 마음을 늘려가려는 마음의 습관(習慣)을 계속하지 않으면 그것이 불법(佛法)이자 무위법(無爲法)입니다. 그런데 집착을 하던 마음의 습관 때문에 집착을 하는 마음을 버리는 그게 잘 안 되지요. 그렇다면 무엇이 집착을 하던 마음을 버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