因鉛은 生命의 法則 / 혜국스님(충주 석종사 선원장) 나는 열세 살에 출가하였는데, 어린나이에 절에 들어왔더니 심심해서 견디기가 힘들었습니다.
같이 놀아주는 사람이 없었기에 심심했고, 어리다고 특별히 시키는 일이 없었기에
심심할수 밖에 없었씁니다. 어른 스님들이 가끔씩 般若心經.
千手經들을 외우라며 과제를 내어 주시는데, 그것도 얼마 안가 외워버리니
할 일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늘 까불며 山으로 돌아다녔습니다.
어느날 돌아다니다 보니 두꺼비 한 마리가 보였습니다.
원래 두꺼비는 복스럽게 생기기는 하였지만 눈이 잘 보이지 않는 동물입니다.
하지만 감각은 예민해서 앞에 뭔가 움직이는 조짐만 느껴지면 혀를 탁 내밉니다.
그러다가 벌레가 붙으면 한입에 집어삼켜 버립니다.
나는 장난을 치느라 강아지풀을 두꺼비 앞에서 뱅뱅 돌렸습니다.
그것이 벌레인 줄로안 두꺼비는 탁 집어 삼켰고, 그 상태로 강아지풀을 들면
두꺼비는 대로대롱 매달려 있었습니다. 두꺼비는 나무 끝에 돌맹이를 묶어서
뱅뱅 돌려도 혀로 감아 입속에 넣습니다. 그러나 우물우물 하다 돌맹이를 퉤 뱉어버리는데,
그 힘이 얼마나 센지 모릅니다. 이처럼 미련스럽기 그지없는 두꺼비도 돌맹이인지 곤충인지,
곧 먹지 말아야 할 것인지 먹어도 되는 것인지를 能히 아는 能力을 갖추고 있습니다.
자연(自然) 속에서 살아가고 살아 있는 생명이기에.
과연 대우주자연(大宇宙自然) 속의 생명(生命)이란 무엇일까요? 이제 식물 중 몇 가지를 살펴 봅시다.
여러 식물 중에서도 유독 고추는 맵습니다.
왜 맵습니까? 고추가 매운 까닭은 흙속에서 매운 氣運만을 골라서 빨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와는 달리 산삼은 영약 氣運만을 빨아들입니다. 그래서 산삼은 귀한 약재로 대접을 받습니다.
그런데 의학적으로 효과가 큰 산삼 속에 어떤 특별한 약성이 있는지는 아직 잘 모른다고 합니다.
萬病을 치유할 수 있는 특별한 성분과 특이한 수치가 나와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그것을 알아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 땅속의 독한 氣運만 빨아들여 성장하는 독초는 사람이 먹기만 하면 해롱해롱하다가
죽을 정도록 독성이 강하다고 합니다. 과연 고추와 산삼과 독초 속에는 어떤 靈魂이
깃들어 있어서 흙속의 매운 氣運. 靈藥 氣運. 독한 氣運을 알고 골라서 빨아들이는 것일까요?
고추와 산삼과 독초 같은 식물들은 어떻게 自然을 알고 있끼에 自身에게 必要한
氣運만을 빨아 들일까요? 더 나아가 고추는 무엇에 依해 存在할까요? 고추뿐만 아니라
世上의 모든 식물. 곤충. 짐승들, 그리고 인간은 무엇에 依해 살고 있는 것일까요?
기독교를 비롯하여 唯一神을 믿는 종교에서는 모든것이 神에 依해 創造되었다고 합니다.
神에 依해 創造 되었기에 모두가 神의 뜻에 依해 存在한다고 합니다.
만약 그 말이 옳다면 自然災害가 일어나 매년 수십.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죽는 일도 神의 뜻일까요?
요즘 세계 각국이 홍수. 가뭄. 태풍 등에 의해 극심한 피해를 입고 있는데,
그것도 神이 창조하는 일 중 하나인가를 반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실로
그 모든 비극적인 사건들을 神이 벌려 놓았다면 神은 참으로 야속한 분임에 틀림없습니다.
만약 부처님께서 人間들에게 罰을 주고 災殃을 내린다면 저는 佛敎를 믿지 않을 것입니다.
실로 인간이나 뭇생명들에게 벌을 주고 재앙을 내리는 종교는 지구상에 있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종교는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처럼 뭇生命들을 철저히 사랑하고 살리기 위해
존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宗敎는 人間을 解脫시키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人間이 宗敎에 끌려가고 拘束당한다면 그런 宗敎는 없어지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럼 유일신을 믿지 않는 불교에서는 모든 것이 무엇에 依해 만들어지고 무엇에 依해
各各 固有한 個性을 가지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는가? 結論부터 이야기하면 불교에서는
모든 것이 因緣에 依해 만들어지고 因緣法 속에서 固有한 個性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먼저 人間肉體의 生成부터 살펴봅시다.
醫學的으로 보면 우리 이 몸뚱이는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 어머니 胎 속에서 왔습니다.
그럼 어머니 胎 속에 있었던 몸은 무엇이 結合하여 이루어진 것입니까?
아버지의 정자와 어머니의 난자가 만나 이루어졌습니다.
약 2억 마리의 정자 중에서 단 한 生命만이 난자의 인도를 받아 子宮 속으로 들어갑니다.
이렇게 胎 속에 들어간 다음 어머니가 먹는 飮食의 氣運으로 살을 만들기 始作합니다.
밥. 국. 반찬. 과일등 흙에서 나오는 飮食物의 氣運으로로 살을 만드는 것입니다.
또 어머니가 먹는 물로 눈물. 콧물 등 몸속의 水分을 만들기 始作합니다.
흙氣運과 물氣運, 이 두가지를 가지고 形像을 갖추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섭취한 칼로리로 따뜻한 體溫을 만드는데 이 칼로리가 바로
太陽熱 에너지 입니다. 그리고 胎 속에서 어머니 呼吸과 함께 하다가
탯줄을 딱 끊으면 코로 呼吸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흙氣運인 지(地), 물氣運인 수(水), 태양열 에너지인 불氣運(火), 空氣 氣運인 풍(風)의
네가지 元素를 宇宙 自然에서 빌려다가 胎 속에서 열달 동안 몸을 만들어 世上에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몸이 만들어지는 過程을 불교에서는 ‘因緣이 모였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地. 水. 火. 豊의 네 가지 氣運이 열 달이라는 時間과 어머니 뱃속이라는 空間 속에서
만들어 졌습니다. 結局 우리 몸은 因緣에 依해 어머니 뱃속에서 만들어졌으며,
지금 이 時間도 因緣에 依해 지탱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植物들은 어떠한가? 무를 예로 들어봅시다.
무를 수확하려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 합니까?
먼저 땅에 씨를 심어야 합니다.
만약 땅에 씨앗을 묻지 않고 돌이나 책상 위에 두면 어떻게 됩니까? 싹이 나지 않습니다.
흙이 없어 創造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 흔한 무도 創造가 되려면 인(因)이 되는 씨앗이 있어야 하고 연(緣)중에서
가장 直接的인 흙氣運이 있어야 합니다. 흙 뿐만이 아닙니다. 비와 태양도 있어야 하고,
空氣라는 바람 氣運으로 식품들의 호흡인 炭素 同化作用을 해야 합니다.
어떻습니까? 사람의 몸과 무의 生成原理가 다릅니까?
꼭 같이 地. 水. 火. 風 네 가지 因緣을 만나야 합니다.
이렇게 무도 인간이 태어나는 것과 다르지 않은 理致로 생겨납니다.
因緣으로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자란 무가 因緣이 다할 때는 사람들이
캐서 먹을 때나 自然災害 등으로 사라질 때입니다. 이것을 因緣의 消滅이라고합니다.
因緣의 인(因)은 單純한 原因이나 씨가 아닙니다. 生命力입니다.
그리고 이 生命力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1951년, 일본 치바현에 있는 2千年 前의 고대유적지에서 연꽃씨앗 세알이 發見되었습니다.
그 씨앗은 흙속에 묻혀 있던 작은 쪽배 안에 있었습니다. 전문가들이 이 씨앗의 껍질을 沙土로 문질러서 얇게 만든 다음 물에 불렸더니 세개중 두개의 씨앗에서 싹이 돋아났고, 그 싹이 점점 자라 붉은 연꽃을 피웠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2010년 여름에 천년이 넘는 연꽃씨를 심어 꽃을 피운일이 방송되었습니다.
천녀, 2천년 전의 씨앗을 심어 꽃을 피운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꽃씨의 생명의 기운, 곧 생명력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可能하였습니다.
물론 꽃씨 혼자서 꽃을 피운 것은 아닙니다.
꽃씨에 있는 靈魂 곧 生命力이 흙. 물. 바람. 열의 氣運을 만나서
연꽃이라는 生命을 피워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生命의 氣運이 있을지라도 緣을 만나지 못하면 創造되지 않습니다.
고추가 땅속에서 매운 氣運만 골라서 빨아들일 수 있는 것은 매운 氣運과 緣을 맺는 核心. 곧 遺傳子가 있기 때문입니다.
[초발심자경문]에, “소가 물을 먹으면 牛乳가 되고, 뱀이 물을 먹으면 毒이 된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하늘에서 내린 빗물은 같은데 왜 뱀의 뱃속에 들어가면 毒이 되고 소의 뱃속에 들어가면 牛乳가 되는 것일까요? 바로 마음의 經路, 곧 因緣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結局 모든 生物은 因緣이 모여 生겨나고 因緣에 依해 存在하다가 因緣이 다하면 消滅됩니다. 이는 生物에만 局限되는 法則이 아닙니다. 自然의 現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火山爆發과 같은 自然災害는 神의 뜻이나 神의 징벌로 發生하는 것이 아닙니다. 땅속 마그마의 作用 때문에 생겨납니다. 쇠나 돌도 능히 녹이는 그 뜨거운 마그마가 땅속을 돌아다니다가 가스를 내뿜고, 그 가스가 쌓이면서 배출이 가장 쉬운 산꼭대기 쪽으로 올라가 ‘펑’하면서 터집니다. 그때 가스와 용암과 재들이 분출되는데, 그것이 바로 화산폭발 입니다. 결국 火山도 神이 아니라 因緣에 依해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植物. 動物. 無生物. 自然現狀 등의 모든 것은 神의 뜻이 아니라 因緣에 依해 生成되는데, 因緣에 依헤 生成된다는 것은 곧 宇宙自然의 法則에 依해 만들어지고 태어난다는 말입니다. 이제 우리가 누구에 依해서 무엇에 依해서 사느냐를 스스로에게 되물어 보십시오.
因緣에 依해서 산다는 答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까?
사람은 空氣나 물이 없으면 살지 못합니다.
空氣는 우리가 태어날 수 있도록 하는데 決定的인 緣을 만들어 주기도 하였지만,
살아가는데 필요한 또 다른 因緣을 連結시켜주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입니다.
물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비를 내려 生命水를 마실 수 있도록 因緣을 맺어 줍니다.
結局 人間을 비롯한 모든 生命은 自然의 因然이 이어져야만 살 수 있습니다.
이 因緣이 딱 끝나게 되면 人間을 비롯한 모든 生命은 남아남지 못합니다.
夫婦사이도 마찬가지 입니다.
늘 함께 붙어 있는 부부라도 因緣이 끝나면 혼자 가야 합니다. 부모 자식간에도 예외가 없습니다.
우리가 주장하는 生命이라는 것, 그리고 關係라는 것은 因緣이 맺어지고 있는 동안을
말하는 것입니다. 因緣이 있어 만났습니다. 避하지 못할 因緣으로 함께 하게된 것입니다.
바로 그 까닭을 오늘의 우리는 살펴 보아야 합니다.
“어떠한 因緣으로 많고 많은 여자 중에서 저 여인을 내 아내로 맞아들였는가?”
“어떠한 까닭으로 내가 저 남자를 내 낭군으로 選擇했는가?”
정녕 그 答을 아시겠습니까? 바로 함께 풀어야 할 업(業), 함께 이루어야 할 원(願)등의
因緣이 있기 때문에 서로를 擇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因緣이 있는 동안에는
함께 살게끔 되어 있고, 그 因緣 다하면 흩어지고 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因緣 때문에 만나기 싫은 사람도 다시 만나야 하고,
因緣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과도 헤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 동식물. 우주자연 할 것 없이 모든 것은 因緣에 依해 모였다가 다시 돌아갑니다.
아무리 처자권속이 줄줄이 이어지고 금은보화가 많은 사람이라도 因緣이 다 되면
結局은 홀로 가야 합니다. 이 世上에는 永遠한 것이 없습니다.
因緣따라 生겨났다가 因緣따라 變하고 因緣의 法則 속에서 흩어집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어떤 분들은 되묻습니다.
“人生이 이처럼 虛妄하고 無常하다면 熱心히 살 必要가 있을까요?”
對答은 ‘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熱心히 살아야 합니다.
바르고 肯定的인 마음가짐으로 熱心히 살면 새롭게 좋은 因을 심을 수 있고,
그 因의 힘으로 좋은 緣을 끌어당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재가인들에게 설하엿습니다.
“가족들을 많이 많이 사랑하고, 돈도 열심히 벌어 좋은일에 써야 한다.”
그리고 살다가 어려운 일이 닥치면 회피하지 말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姿勢를 취하라고 하셨습니다.
“좋다 因緣이 이러하고 언젠가는 갚아야 할 일이라면 지금 받겠다.
땅은 비온 뒤에 더 굳어지는 법이다. 지금의 어려움을 잘 극복하면 내 因緣은 더욱 熟盛되고,
내 靈魂도 더 맑아져 있을 것이다. 어려운 일들아, 어서 오너라. 어찌 지금 미루어 避하여
來生에 다시 만날 것인가! 지금 이 生에서 解決을 보리라.”
이렇게 마음姿勢를 가다듬을 때 우리의 몸을 적시는 빗물은 우유가 되고,
나 自身의 靈魂이 더욱 맑아지는 時間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그것도 그냥 우유가 아니라 프리미엄 우유가 되는 時間입니다. 꼭 明心하십시오.
지금 우리가 因緣을 어떻게 짓느냐에 따라 우리는 毒도 만들 수 있고 牛乳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거룩한 부처님의 사리도 만들 수가 있습니다.
因緣法 속에서 存在하고 있는 人間은 어느 때나 修行의 길과 欲望의 길 中 하나를
選擇할 수 있습니다. 向上의 길과 墮落의 길 中 하나를 選擇할 수 있습니다.
이 가운데 修行의 길, 向上의 길로 나아가려면 競爭相對를 남이 아닌 自身에게 두어야 합니다.
내가 싸워서 이겨야 할 敵은 ‘나’속에 있습니다. 내안의 貪心. 瞋心. 痴心이 바로
싸워서 이겨야 할 敵입니다. 이 그릇된 마음을 먼저 制禦하고 이겨내야 합니다.
다른 사람과 싸워 이기는 것은 아무 所用이 없습니다.
오히려 이기고 나면 원망과 질투가 따라오고, 지면 분해서 밤을 지새우게 됩니다.
마음의 平和는 나에게 이기고 지는 것을 넘어서야만 올 수 있습니다. 오히려 마음의
平和를 얻기 위해서는 내 속에서 일어나는 貪瞋痴心과 怨望과 利己心과 싸워야 합니다.
“三毒心을 滅하면 究境涅槃, 곧 寂滅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寂滅의 모습, 고요한 모습, 그것이 마음의 平和입니다.
실로 內面의 싸움에서 이기려면 내 마음의 그릇을 키워야 합니다.
내 마음의 그릇을 키우는 작업은 바로 因緣을 아름답게 만드는 길입니다.
그릇이 커지면 남의 허물이 보일 때 스스로 깨닫고 경책합니다.
‘아, 아직도 남의 허물이 보이니 내 속에 남이 잘못 되기를 바라는 氣運이 있구나.
저것은 보지말자. 남의 허물보다 내 마음에 있는 허물부터 고치자,
이는 내 안의 어리석은 欲望 때문이다. 이런 欲望으로 因해 남의 허물을 보고 怨望한다면
結局 나만 초라해지고 망가질 뿐이다. 所重한 나를 아껴 좋은 因緣을 심어야 한다.”
이렇게 다가오는 緣에 대한 나의 마음가짐을 길들이고 가꾸어 나가는 멋이야말로
人生과 生命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事)이 됩니다.
언젠가 요즘 젊은 아가씨들이 배꼽수술을 하기 위해 병원에 간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얼굴성형이나 지방흡입이 아니라 배꼽모양까지 바꾼다고 합니다.
누구든 이 세상에 나오는 순간 어머니와 連結되어 있던 탯줄을 끊게 되고,
그 탯줄을 끊은 貌樣대로 생긴 것이 배꼽입니다. 그 배꼽을 보면서
‘우리 어머니나 할머니가 내 탯줄을 이렇게 잘라줬구나’하면 되는데,
굳이 손을 대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예쁜 배꼽 때문에? 과연 어떻게 생겨야 예쁜 배꼽입니까?
수술하여 배꼽모양까지 바꾸겠다는 發想이야말로 참으로 어리석은 生覺입니다.
自己 몸의 생긴 貌樣이 정 싫으면 今生에 꽃供養을 자주하고, 남에게 좋은 말을 많이 하고,
마음을 넓게 써서 다시 태어날 때 잘 생기게 나면 됩니다.
그러면 칼을 대지 않아도 얼마든지 願하는 대로의 잘 생긴 外貌를 갖출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의 成形手術은 하지 않고 얼굴만 자꾸 뜯어고치고, 그 가짜 얼굴로 교만해지니
이러한 因緣을 심은 이가 來生에는 정녕 어떠한 모습을 띄게 될지 걱정입니다.
이 성형수술은 내가 잘나지고 싶은 欲望에서 行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에 대한 그릇된 欲望과 錯覺이 어찌 성형수술 뿐이겠습니까?
보통 사람들은 '나'라고 하면 몸뚱이를 많이 生覺합니다.
그래서 몸뚱이부터 챙기고 몸뚱이를 위해주는 欲望을 즐겨 쫓아갑니다. 그러나 몸뚱이는 언젠가는 배신을 합니다. 아니, 지금 이 瞬間도 몸뚱이에게 배신을 당하고 있습니다.
요즘 나는 아침에 일어나려고 하면 몸이 뻐근할 때가 많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벌떡 일어나지더니, 새벽 2시에 일어나려고 하면 몸이 찌뿌드드 합니다.
‘아이고, 이놈이 벌써 나를 배신하여 몸뚱이를 마음대로 못쓰게 하는 구나’
지금은 이 程度로 느끼고 있지만 언젠가는 몸져눕게 만들고 마침내는 죽게 되겠지요.
그런데 죽을 때가 언제인지를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몸뚱이가 죽을 때 우리들에게 “主人님, 먹여주고 입혀주느라고 애썼습니다.
언제 죽을까요?”하고 물어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느날 그냥 죽어버립니다. 이처럼 몸뚱이는 언젠가는 틀림없이 배신을 합니다.
그럼 이렇게 몸이 나를 배신하고 흙으로 물로 불로 바람으로 돌아갈 때
우리는 누구를 依持해야 할까요?
이럴때 내 몸안에 길들여 놓은 내 因緣, 곧 내 마음에 依持해야 합니다.
주위의 因緣을 가꾸고 스스로의 마음밭을 가꾸며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밭은 넓습니다. 한 生覺에 美國을 갔다 올 수 있고 달나라까지
다녀올 수 있을 程度로 넓습니다.
이 마음밭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宇宙에 가득차고도 남는다고 합니다.
부디 몸뚱이를 위해 마음을 犧牲시키지 마십시오.
모든 因緣, 그리고 宇宙法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인 마음법에 依해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마음이 먼저 가면 物質이 저절로 따라오고, 마음이 뒤에 있는 사람은 물질이 쫓아오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福業을 쌓으려면 마음을 잘 닦아 좋은 因緣으로 가꾸어야 합니다.
마음을 잘 닦으면 마음이 平和로워지고 마음이 平和로워지면 因緣을 잘 가꿀 수 있게 되며,
因緣을 잘 가꾸면 能히 福業이 깃들기 마련인 것입니다.
부디 마음이 主人이라는 것을 알아서 마음을 위해 살고 마음 닦는 쪽으로 나아가십시오.
마음을 찾는 쪽으로 工夫를 하다가 마음을 알게 되면 하루아침에 三千大天 世界를 알게 되고
一大事因緣을 解決할 수 있게 됩니다.
因緣의 삶 속에서 부디 마음을 잘 닦아,
能히 참生命을 살리고 기르는 멋진 삶을 성취하시기를 祝願 드립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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