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제(4) - 괴로움을 거부할수록 괴로움은 계속된다
괴로움을 거부할수록 오히려 괴로움은 더욱 지속될 수밖에 없다. 괴로움을 거부하는 마음이 바로 내가 스스로 만든 비교 분별 판단 해석한 괴로움을 실체화시키고 강화시키기 때문이다. 강하게 거부한다는 마음은 곧 그 거부하는 대상이 진짜라고 착각하기 때문에 기인한다.
스스로 만든 분별 비교 판단 해석한 괴로움에 실체성이라는 에너지를 부여한 채,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니, 한 쪽에서는 내 스스로 괴로움을 만들고, 다른 한 쪽에서는 그 괴로움을 거부하며 멀어지려고 하나, 이 두 마음이 다 내 마음이다. 내 마음 하나를 둘로 나누어 하나는 괴로움을 세우고, 하나는 괴로움을 무너뜨리려 하니 이것은 내가 나와 싸우는 것이 아니겠는가.
현실은 그저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일 뿐이다. 현실에 ‘괴롭다’고 해석한 것은 내 생각이다. 내 생각이 현실이 ‘괴롭다’고 분별 비교 판단 해석하고 그 분별 비교 판단 해석이 옳다고 실체화시키고 믿으니까, 그 괴로을 거부하려는 두 번째 마음이 또 생기는 것일 뿐이다. 이 둘 다 허망한 망상일 뿐이다.
괴로움을 거부하면 거부할수록 괴로움은 더욱 더 지속되고 에너지를 키울 뿐이다. 공연히 쓸데없이 제 마음만 힘들어질 뿐이다. 괴로움을 거부하는 마음의 원동력이 된 ‘괴롭다’는 생각 자체가 분별 비교 판단 해석이며 착각이었음을 알아차리면, 더 이상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거부하지는 않게 될 것이다. 그저 그냥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살아줄 것이다.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괴로움’이라고 분별 비교 판단 해석하면 현실은 내게 ‘괴로움’으로 경험되지만,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그저 그냥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현실은 더 이상 괴로움으로 경험되지 않는다. 괴로움이 착각이었음이 밝혀진다.
그동안 내가 겪어왔던 모든 괴로움이 실제는 괴로움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내가 허망한 망상의 어리석음을 일으켰기 때문에 현실을 괴로움이라고 착각했던 것일 뿐이다. 그러니 내가 괴로움이라고 여겨왔던 현실이 사실은 괴로움이 아니라, 성스러운 진리’였음을 깨닫게 된다.
글쓴이 :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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