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본래 풍요롭다는 완전성의 이해
모든 수행자들의 공통적인 원(願)은 구류중생(九類衆生), 즉 일체 생명 있는 모든 존재를 깨달음으로 이끌어 완전한 행복에 이르게 하겠다는 것이다.
‘부처의 완전한 지혜와 자비가 우리에게도 동등하게 갖추어져 있다는 것’이 불교의 본 뜻이다.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가 어리석다고 착각하면서 완전성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본래 부처로 다시 되돌아가자는 것, 그것이 귀의(歸依)다. 절에 갈 때마다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에 귀의하고 삼배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내가 본래 부처요, 법이요, 불법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수행자라는 것이다.
내가 바로 부처라면 무엇이 바뀔까. 부처니까 무한한 풍요로움과 지혜가 나에게 갖춰져있다. 따라서 밖에서 지혜와 물질적인 풍요를 구할 것도 없다. 끊임없이 바깥을 향해 치달려 나가기만 하던 습관을 돌이켜야 한다.
그동안은 내가 부족하고 어리석어서 밖에서 지혜를 찾고, 돈과 명예와 권력을 찾고, 그밖에 수많은 것들을 밖에서 끌어당기면서 행복을 추구해 왔다. 바깥을 쫓아다니면서 온갖 좋은 것들을 끌어 모으는 것,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행복인 줄 알았다. 이러한 착각은 ‘내가 어리석다. 부족하다.’는 생각의 토대에서 시작된 것이다. 내가 본래 지혜며 자비이고, 풍요이며 사랑이라면 바깥에서 찾고 끌어올 필요가 없다.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행복할 수 있고, 완전히 만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무언가가 더 충족되고, 돈도 더 벌고, 사랑을 더 받고, 좋은 집과 차를 사야만 행복할 것이라고 여긴다. 자신들은 궁핍하고, 결핍되어 있고, 부족하고, 지혜롭거나 자비롭지 않고, 사랑이 부족하다는 생각들이 사람들 인생을 망치고 있는 갓이다.
반대로 ‘나는 완전히 갖추어진 존재다’라고 믿으면 거기에 따른 행동이 나온다. ‘나는 사랑이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가족과 친구, 이웃과 동료들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마음의 여유까지 생겨난다.
보편적인 사고방식이라면 ‘가진 게 부족하니 베풀면 나는 또 가난해지겠구나’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 사랑을, 자비를 베풀고 나면 그만큼 반드시 채워진다. 대가 없이 진심으로 베풀면 그만큼만 채워지는 게 아니라 훨씬 넘치게 채워지게 된다. 그리하여 더욱 풍요로워지고 행복해진다.
‘나는 풍요롭다’는 생각을 가지고 베푸는 것과 이 우주의 풍요로움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은 서로 다르지 않다. 베풀면 풍요로움이 끊임없이 생성될 수밖에 없다.
글쓴이 :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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