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마음의 본래 성품
중생심 일으키는 모든 마음이 번뇌
바람이 불면 흔들리던 물이 바람 그치면 다시 고요해지 듯
분별심 · 집착심으로 중생 됐어도 원성실상 모습은 잃지 않아
원성실상에 대한 비유이다.
“선남자여! 마치 눈병이 치료되어 깨끗한 눈을 가진 사람에게는 갖가지 어지러운 경계들이 사라진 것처럼 원성실상 또한 그러함을 알아야 한다.”
원성실상이란 원만하고 참다운 마음의 모습이라는 뜻이다. 중생의 마음은 인연에 의해 나타나는 의타기상이지만, 중생은 이 사실을 잊고 분별심과 집착심으로 인해 중생의 마음을 변계소집상으로 잘못 인식한다. 마음 스스로가 마음을 미혹하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이렇게 왜곡된 모습으로 전락하더라도 마음의 본래 모습이 변하거나 사라지지는 않는다. 이는 마치 눈병이 난 사람에게 여러 문양이 보이더라도 눈의 기능은 변하지 않듯, 마음도 그러하다.
이해를 돕기 위해 비유를 더 든다면 물은 아무리 맑아도 흙을 집어넣으면 흐려진다. 또 물은 고요한 성질을 띠고 있지만 바람이 불거나 막대기로 저으면 흔들리게 된다. 그러나 물이 아무리 오염되고 흔들린다 해도 물이 지닌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 성능이 좋은 정수기로 오염된 물에서 흙을 완전히 걸러내면 물은 다시 맑아진다. 바람에 의해 흔들리던 물도 바람이 그치면 다시 고요해진다.
이처럼 마음이 변계소집상을 일으켜 중생이 되었더라도, 마음 본래의 모습은 변하지 않아 원성실상의 모습을 잃지 않는다. 그래서 ‘원각경’에서는 중생을 ‘미생불(未生佛)’이라고 설한다. 비록 중생의 마음이 부처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그 본성에 있어서는 부처님과 조금도 차별이 없기에 미생불이라고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화엄경’의 ‘심불급중생시삼무차별(心佛及衆生是三無差別: 마음과 부처와 중생은 차별이 없다)’, 선가의 ‘즉심즉불(卽心卽佛: 마음이 곧 부처)’도 의미는 마찬가지이다.
대승 교리에서는 무엇보다 믿음을 중시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때의 믿음은 단순히 부처님이나 가르침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 곧 부처라는 사실을 믿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마음의 원성실상은 과연 변계소집상 그리고 의타기상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을까?
이들의 관계는 이렇다. 유식 삼상 가운데 의타기상이 마음의 법칙이라면 변계소집상은 이를 잘못 알아 번뇌가 된 마음이고, 원성실상은 이를 바르게 알아 더 이상 번뇌를 일으키지 않게 된 마음이다. 의타기상을 두고 이에 미혹하면 변계소집상이 되고, 이를 깨달으면 원성실상이 되는 것이다. 경전에서는 마음의 이러한 관계들에 대해 비유를 들어 자세히 설명한다. 먼저 의타기상과 변계소집상의 관계에 대한 말씀이다.
“선남자여! 비유를 들자면 맑고 깨끗한 파지가보(頗砥迦寶)라는 보배 구슬에 파란색을 비추면 청색의 대청마니보주(大靑摩尼寶珠)로 나타나 중생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붉은색을 비추면 호박마니보주(琥珀摩尼寶珠)로 나타나 중생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노란색을 비추면 진금마니보주(眞金摩尼寶珠)로 나타나 중생들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러나 이 상들은 어디까지나 진실이 없고 자성이 없는 것처럼 의타기상 위에서의 변계소집상도 진실이 없고 자성이 없다. 원성실상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느니라.”
이 비유에서 맑고 깨끗한 파지가보라는 보주는 마음의 의타기상에 해당하고, 다양한 색깔을 비추어 나타난 대청마니보주, 호박마니보주, 진금마니보주가 마음의 변계소집상에 해당한다. 유식 교리에서 중생들이 일으키는 모든 식은 일단 번뇌로 취급한다. 마음의 본성을 깨치지 못하고 일으키는 중생의 모든 마음을 번뇌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번뇌들은 본래 연기성이고 의타기성이라 그 모습과 성품에 진실성이 없다고 말한다. 마치 파지가보에 각종 색깔을 비추어 나타난 푸르고 붉고 노란 보주들이 각자의 모습이 아닌 것처럼, 변계소집상 역시 그러하다.
이제열 불교경전연구원장 yoomalee@hanmail.net
[1751호 / 2024년 11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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