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 31

생각을 지켜보는 자(者)

생각을 지켜보는 자(者) 어느 날 남편이 밤늦도록 집에 안 들어오고 전화도 안 받으면 부인의 내면의 목소리라는 생각은 속삭입니다. ‘남편의 귀가가 왜 이리 늦지? 혹시 교통사고라도 난 건 아니겠지? 아닐 거야. 술 잔뜩 먹고 취해서 오다가 길에서 쓰러져 자나? 아니면, 예전에 빨래 하다가 보았던 루즈 자국이 있었잖아? 혹시 남편이 다른 여자하고 바람피우고 나쁜 짓 하는 거 아니야? 에이 설마, 그럴 위인도 못돼! 그러면 왜 이리 늦는 거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아, 몰라 몰라 복잡해...’ 그냥 있는 그대로의 현실은 남편이 그저 집에 늦게 오는 것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부인의 내면의 생각은 끊임없이 속삭이며 남편을 살리고 죽이기를 반복하고, 교통사고에 바람피우는 사람으로까지 몰고 가며 생각이 일어날..

고통을 깊이 들여다보면 그 관찰을 통해 진실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고통을 깊이 들여다보면 그 관찰을 통해 진실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불교 용어로 이 세상을 사바세계라 합니다. 사바세계란 고통(괴로움)을 감내하는 세계란 뜻입니다. 생노병사로 대표되는 수많은 고통을 경험하는 것을 통해 진리를 깨달아가는 곳이 이 세상입니다. 고통, 역경, 괴로움이 왔다는 것은 곧 그것을 통해 깨달을 때가 왔음을 알려주는 신호와도 같습니다. 사람들은 고통, 역경, 괴로움을 내 인생에 오면 안 될 것, 없애버려야 할 것이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고통, 역경, 괴로움이 오자마자 그것들을 거부하고, 그것들과 싸우고, 그것들로부터 도망치고, 그것들을 제거하려 합니다. 즉 고통, 역경, 괴로움은 곧 우리가 '무엇'을 피해 달아나고 있는지, '무엇'을 거부하고 있는지, '무엇'을 제거하려고 하는지, '..

생중계로 삶을 해설하는 하는 생각( 생각’의 실체)

생중계로 삶을 해설하는 하는 생각( 생각’의 실체) 인도순례 중에 30대 중반 쯤 되어 보이는 한국 남자분을 만나 며칠 동행한 적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말이 얼마나 많은지, 하루 종일 옆에서 한 숨도 쉬지 않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여행지에서마다 어김없이 곁에서 나도 뻔히 보고 있는 눈앞의 모습을 곁에서 생중계를 하듯이 하나하나 중계방송을 해 주는 것이 아니겠어요. 이런 사람과 하루를 함께 해야 한다면 어떨까요? 아니 이런 친구와 평생을 함께 살면서 그 끝도 없는 소리의 홍수를 온몸으로 받아내야 한다면 또 어떨까요? 생각만 해도 아찔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여기 제가 우려하던 바로 그 상황이 놓여있습니다. 끊임없이 떠들고, 재잘대고, 수다를 떨며 단 한 순간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정..

그저 모를 뿐!

그저 모를 뿐! 이 세상은, 삶은, 나는 그저 모를 뿐인 알 수 없는 놀라운 신비다. 그냥 그저 모른 뿐인 놀라운 신비 그것이 무엇인지 일반인들로서는 알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 필요도 없다. 그저 그냥 모를 뿐이다! 이 세상은, 삶은, 나는 그저 모를 뿐인 알 수 없는 놀라운 신비를 모른다는 사실을 쿨하게 인정하라. 이 세상을, 삶을, 나를 모르기 때문에 진정으로 자유롭다. 이 세상을, 삶을, 나를 알려고 들면 알아야 할 수많은 것들이 끊임없이 나를 무지한 자로 비웃고 말 것이다. 이 세상을, 삶을, 나를 안다고 여기는 착각이 있을 뿐, 진정 이 세상을, 삶을, 나를 아는 것은 없다. 이 세상을, 삶을, 나를 알려고 하는 노력을 포기해 보라. 이 세상은, 삶은, 나는 알 수 수 없는 불가사..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중도 수행, 수용, 허용)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중도 수행, 수용, 허용) 불교 수행의 핵심인 중도를 조금 더 쉽고 현대적인 언어로 표현하면 '받아들임'입니다.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라는 현실, 삶에 대한 온전한 허용이 받아들임입니다. 그리고 받아들임은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늘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 순간인 지금 여기 현재를 받아들이며 살고 있지요. 다만, 분별을 일삼는 생각으로 현재를 거부하거나 집착하면서 취하거나 버리려는 분별 때문에,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으면서도 생각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하니, 그 간격 만큼의 괴로움이 오는 것입니다. 진리는 언제나 단순합니다.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를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하지 않고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를 그저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그대로 받아..

삶을 집착하거나 거부하는 순간 조차 삶은 지금 이 순간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삶을 집착하거나 거부하는 순간 조차 삶은 지금 이 순간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누구나 삶을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단 한 순간도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의 삶을 받아들이지 않은 적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영적인 스승들이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의 삶을 '받아들여라', '허용하라', '인정하라'라고 말하는 이유는, 지금 여기 있는 삶을 있는 그대로 이미 받아들이고 허용하고 인정하고 있음에도 분별하는 것을 일 삼는 생각으로 지금 여기 있는 삶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이란 놈은 늘 지금 이 순간을 둘로 나누어서, 지금이라는 이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좋은 순간'이거나, '싫은 순간'으로 둘로 나눕니다. '좋은 순간'은 집착며 더 지속되기를 원하고, '싫은 순간'은 거부하며 피해 도망..

어째서 부처를 뽑는 곳인 선불장(選佛場)에는 가지 않는가?

어째서 부처를 뽑는 곳인 선불장(選佛場)에는 가지 않는가? 단하천연(739~824) 선사는 석두희천의 제자이며 출가 전에는 방거사와는 친구 사이였다. 출가 전 방거사와 함께 과거 시험을 보려고 장안으로 가던 중 그 둘에게 한 스님이 물었다. "어디로 가는 중인가?" "과거를 보러 갑니다." "공부가 아깝구나. 어째서 부처를 뽑는 곳에는 가지 않는가?" "부처를 뽑는 곳이 어디입니ㄲ?" "지금 마조스님께서 설법 중이신데, 그곳엔 도를 깨친 이가 이루 헤아릴 수 없소. 그곳이 부처를 뽑는 곳이오." 이 말을 듣고 방거사와 단하는 마조도일을 찾아간다. '부처를 뽑는 곳'을 선불장(選佛場)이라고 한다. 옛날의 방거사와 단하처럼 현대를 사는 우리들 모두 과거급제를 위해, 성공을 위해, 취업을 위해, 합격을 위해,..

변화하고야 말겠다는 야심찬 노력?

변화하고야 말겠다는 야심찬 노력?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 여기 이대로의 자신의 삶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여깁니다. 지금 여기 이대로 있으면 세상에서 두처질 것 같은 생각이지요. 그래서 무언가 새로운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여깁니다. 그리하여 어떤 방향으로 변해야 좋을지 본인도 모르면서 어쨌든 변화를 꿈꾸고, 야심차게 변화하리라 마음먹곤 합니다. 변화하기 위해 끊임없아 노력을 합니다. 변화하지 않는 사람은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것이 이 시대가 우리에게 주고 있는 경고가 아닙니까. 세상도 끊임없이 변합니다. 이렇게 휙휙 변화해 가는 세상에서 나만 변하지 않고 지금 그대로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답답함도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 구체적으로 어떻게 변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주인은 왔다 갔다 하지 않는다

주인은 왔다 갔다 하지 않는다 6. 경계 체험의 착각 구도자가 찾는 주인은 부동심, 부동심의 고요한 주인은 곧 ‘지금 여기’ ‘지금 여기’란 성품 깨 있으면 눈앞의 모습, 경계에 집착하거나 상관하지 않아 어떻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진리이지만, 많은 구도자들이 수행의 과정에서 잊고 실수하는 부분이 바로 “왔다 갔다 하는 손님을 주인으로 착각”하는 경우이다. 즉 없었다가 새로 생겨난 신기한 경계 체험을 하게 되면 ‘이것이야말로 내가 기다리던 깨달음의 체험인가 보다’라고 여기면서 자신도 모르게 그 경계 경험을 붙잡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경계 체험의 내용은 어느덧 변해서 사라지고 만다. 원래부터 있었던 주인이 아니고 손님으로 찾아온 경계 체험은 인연이 다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떠나게 마련이기 때문..

[법륜스님 - 틀렸다 다르다]

[법륜스님 - 틀렸다 다르다] 부부가 같이 살다 보면 두 사람이 서로 다르다는 걸 알게 되지요. 남편은 아내가 차린 음식을 먹고는 ‘싱겁다. 이것도 간이라고 맞췄냐?’ 하지만 아내는 똑같은 걸 먹고도 ‘간이 딱 맞는데 뭘 그러냐?’고 하기도 합니다. 같이 살아보면 이렇게 전부 다릅니다. 남편은 샤워하러 들어갈 때 옷을 벗어서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들어가는데, 아내는 그 벗은 옷을 차곡차곡 개서 쌓아놔야 되는 사람이 있고, 남편은 젖은 수건도 말렸다 또 사용하는데, 아내는 1번 사용한 젖은 수건은 무조건 빨래통에 집어넣는 사람도 있고요. 이렇게 소소한 걸로 두 사람을 비교해 보면 100가지, 1000가지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이건 두 사람이 결혼해서 함께 사는데 필연적으로 따르는 요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