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三界唯心 萬法唯識 (삼계유심 만법유식 )

장백산-1 2018. 1. 4. 00:04

三界唯心  萬法唯識 (삼계유심  만법유식 )


삼계(욕계, 색계, 무색계라는 이름의 이 세상)가 오직 마음일 뿐이고(삼계유심 三界唯心), 


만법(萬法, 이 세상 모든 것)이 오직 의식일 뿐이다(만법유식 萬法唯識).



-현정선원 대우선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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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因緣) 따라서 생겨나는 이 세상 모든 것은 <본래 자체의 성품>(자체성 自體性)이 없기 때문에 <다른 


것(법法)> 인연(因緣)에 의지(依持)해서만 존재(存在)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이런 사실(事實)이 연기(緣起)


의 이치(理致)입니다. 마치 빛의 그림자가 물체에 의지해서 생겨나고, 메아리가 소리라는 파동(波動)하는 


에너지에 의지(依持)해서 생겨나듯이 말이에요. 만약 그림자나 메아리가 본래 그것 자체의 성품이 있는 것


(法)이라면 꼭 다른 것에 의지해야만 존재 할 까닭이 없지 않겠어요?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우주만물의 인연(因緣)에 따라서 생겨나는 모든 法은 ―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우주만물의 인연(因緣)으로 말미암지 않고 생겨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 자체의 성품이 없기에, 


마치 꿈과 같고 환(幻)과 같아서, 전혀 진실(眞實)됨이 없는 건데, 다만 사람들이 그 겉모양에 헷갈려서 이 


허망하고 무상(無常)한 형상(形相)을 실체(實體)로 오인하여 집착함으로써 이 세상모습이 마치 실유(實有)


인 양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된 것입니다. ··· 




저 '알렉산더'나 '징기스칸'과 같은 영웅 호걸들이 이룩한 대제국(大帝國)이 지금 모두 어디로 갔습니까? 


2,500여년 전에, '붓다'도 이 事實을 문득 깨닫고 깊이 사색(思索)해 보니, 새벽 별이 새벽 별이 아니고, 


이 世上 이 모두 <있되 있음이 아니고, 없되 없음이 아닌> 묘(妙)한 존재 즉, 진공묘유(眞空妙有)라는


사실을 밝혀냈던 것이고, 




20세기 들어서 일체 존재의 실상(實相)을 구명하던 과학자들도 오랜 연구 끝에, 일체 만유(萬有)의 구경


(究竟)의 질료(質料)인 양자(量子, quantum)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는 진실로 엄청난 


놀라운 사실의 발견(發見)에 도달하게 된 겁니다. 




요컨대, 인간들의 관찰의 대상인 이 世上 一切 萬物은, 人間들의 觀察 行爲와는 전혀 相關없이 저 바깥에 


그것들 自體의 固有의 性稟을 가지고, 저마다의 길을 가면서, 獨立的인 기능을 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사람들의 生覺 意識 마음에 依持해 만들어진, 다시 말해서, 인간들이 스스로의 업(業)으로 投映한 허망한 


생각 마음 의식의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결국 삼계(三界)는 유심(唯心)이요, 만법


(萬法)은 유식(唯識)이고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겁니다. 




* * *


본래 아무 일도 없는 <如如한 法>(如法) 가운데서 헛되이 생과 멸(生과 滅)을 분별해서 보고 가고 옴(去來)


를 분별(分別)해서 바라봄으로써 이 세상사(世上事)가 마치 꿈처럼 환(幻)처럼 중생의 마음 속에 投映된 것


입니다. 따라서 이 세상의 실상(實相)은 전혀 범부의 망령된 계교(計巧) 때문에 <있음>이 된 것이므로, 이 


잘못된 망견(妄見)을 떼어주기 위한 方便으로 어쩔 수 없이 <공(空)한 도리>를 설하게 된 것인데, 사람들


은 이 方便의 空한 도리의 말씀을 잘못 알고는, 제법실상(諸法實相)의 뜻을 <있음>이라고 알면 잘못 아는


것이고, <공(空)했다>고 알면 바르게 아는 것이라는, 또 하나의 분별 망상 번뇌 망견(妄見)을 갖기에 이르


렀으니, 참 딱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법실상(諸法實相)의 뜻은 空 · 有 양변(兩邊)이 모두 옳지 않으며, 이 <옳지 않다>는 말도 또한 군말일 


뿐이지만 요컨대 <법의 본래법>(本法)은 法도 아니고 法 아님도 아니니, <여여>(如如)라고 해도, <여여가 


아니라> (不如如)고 해도 다 맞지 않아서, 마치 두꺼운 철판 위에 올라앉은 모기처럼 도무지 주둥이를 댈 


수가 없는 겁니다. 




결국 여여<如如>라고 해도 벌써 변(變)해 버린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결정코 불생불멸(不生不滅) 법문


(法門)에 들어서, 진실로 면전엔 티끌 만한 한 법(法)도 없음을 사무친 사람은, 일체의 현전상(現前相)이 


100% 생각 마음 의식만으로 망령되이 세워진 자신만의 허망한 환상임을 알게 되며, 이야말로 <만법이 


유식임>(萬法唯識)을 말하는 근거인 겁니다. 




그러기에 고인이 말하기를, 「석가모니부처님이 자신은 일찍이 한 마디 말도 설한 적이 없다는 事實을 


알면 이를 일러서 다문제일(多聞第一)이라 한다」고 했던 게 아니겠어요? 결국 진정한 설법(說法)이란, 


말함도 없고, <드러내 보일 것>(現示해 보일 것)도 없는 것이 <참된 설법>(眞說)임을 분명히 알아야 


하며, 따라서 진정한 법보시(法布施)란 자신이 기왕에 보고 듣고 배워서 기억해 두었던 것을 남에게 말


해주는 게 아니라 ―그것은 세속의 강의나 강연입니다 ― 순전히 천진(天眞)한 자기 가슴에서 우러나오


는 한 생각 한 마음이 온누리를 껴잡는 말이라야 참된 설법임을 알아야 합니다. 거기에는 끝내 인간의 


범용(凡庸)한 지견의 산물일 수밖에 없는 일체의 이치(理致)나 도리(道理)가 끼여들 여지가 없습니다. 




요약하건대, 선지식(善知識)이란, 이 세상 모든 것이 범부가 미혹 때문에 스스로 지은 업영(業影)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 눈앞에 전개된 온갖 경계를 지나면서 이에 까닭 없이 막히고 걸리고 하면서 


헐떡이는 것을 딱하게 여기고는, 어느 것 어디에고 걸리지 않는 선교(善巧)한 방편을 베풀어서, 붙은 것


은 떼어주고, 막힌 것은 뚫어주고 하는 것이 바로 선지식이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일임을 알아야 합


니다. 결코 스스로는 흙탕물 속에 있으면서 협열(狹劣)한 소견으로 성지(聖旨)를 어둡히는 일이 있어선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