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성제 중 멸성제 - 괴로움의 소멸
멸(滅)은 ‘니르바나’의 음역으로, ‘번뇌로 타는 불이 훅 꺼진 상태’로 흔희 회자되는 ‘열반(涅槃)’이다. 다시 말해, 괴로움의 원인인 온갖 번뇌로 타는 불길이 훅 꺼진 상태, 즉, 고(苦/ 괴로움)이 소멸된 상태다.
집성제는, 십이연기의 유전문을 통해 괴로움의 원인을 고찰해 십이지분을 거슬러 올라가 보니, 괴로움의 근본 원인이 무명(無明)이라고 관찰한 것이다. 그렇다면,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멸성제는 어떻게 하면 될까?
불교는 현상 세계가 ‘괴롭다’라고 하여, 괴로움의 원인을 밝히는 것 자체에 목적을 두지는 않는다. 괴로움의 원인을 밝힌 것은, 그 원인을 제거하여 괴로움이 없는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 작업일 뿐이다.
집성제인 괴로움의 원인을 십이연기의 유전문을 통해 살펴보았다면, 멸성제에서는 그 십이연기의 12가지 지분을 소멸시켜 나가는 환멸문을 통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노-병-사의 괴로움을 멸하기 위해 그 원인인 생(生)을 멸해야 하고, 생을 멸하기 위해 그 원인인 유(有)를 멸해야 하고, 유를 멸하기 위해 취(取)를 멸해야 하고, 이렇게 해서, 결국에는 무명(無明)을 멸하면 괴로움의 모든 고리가 끊어져서 괴로움의 소멸인 열반의 상태까지 다다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십이연기의 환멸문(還滅門)’이라 하며, 이렇게 노사에서부터 무명까지 역으로 관찰하는 관법이 바로 역관(逆觀)이다. 이렇듯 십이연기 환멸문의 역관이 바로 멸성제이다. 그렇기에 멸성제는 다른 말로, 괴로움의 원인이 되는 지분이 모두 소멸된 경지이기 때문에 열반이라고도 표현된다.
멸성제에서는 괴로움의 원인이 소멸될 수 있으며, 괴로움의 원인이 소멸되면 열반에 이를 수 있음을 설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 곧 멸성제다. 멸성제는 우리에게 깨달음의 가능성과 고를 소멸할 수 있는 가능성에 눈뜨게 한다. 누구나 고를 소멸하고 열반에 이를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다.
명성제는 결코 교리적인 확신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불교는 그런 것이 아니다. 멸성제는 '지금 여기'에 있는 나 자신에게 바로 멸성제의 삶으로 곧장 뛰어들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 멸성제는 교리이거나, 이상이거나, 큰스님이나 부처님만 갈 수 있는 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은 바로 지금 여기 있는 당신이 바로 멸성제이다.
멸성제는 지금 여기에 곧장 드러나 있고, 우리는 늘 이 진리와 함께 있다. 용기를 잃지 말고, 저 멀리 있는 것이라고 여기지 말고, 내가 이번 생에 끝끝내 멸성제에 이를 것이라는 믿음을 일으켜 보라. 분명히 길은 있다. 지금 이 순간도 멸성제에 다다른 많은 사람들이 있다고 확신한다! 이제 바로 당신이 이 자리에 이를 차례다. 눈을 뜨고 마음을 열면 길은 있다.
이러한 열반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한다. 살아있는 동안 성취하는 열반을, ‘생존의 근원, 즉, 육신이 남아 있는 열반’이라 하여 ‘유여의열반(有餘依涅槃)’이라 하고, ‘생존의 근원이 남아 있지 않은 열반’을 ‘무여의열반(無餘依涅槃)이라 한다. 무여의열반은 완전한 열반을 의미하므로 반열반(般涅槃)이라고 하는데, 이는 정신적, 육체적인 일체의 고(苦)가 모두 소멸된 열반의 경지이다.
글쓴이 :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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