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팔계(4) - 내가 만든 고(苦)에서 벗어나려면
불교 공부에서는 육식(六識)이 가장 중요하다. 육식 (六識)이 불교에서 말하는 괴로움[고(苦)]의 실질적인 원인이기 때문이다. 육식은 대상을 분별해서 아는 마음으로 곧 분별심(分別心)이다.
육식의 특징은 모든 대상들을 좋아함 싫어함, 맞다 틀리다, 크다 작다 등 두 가지로 나누어서 인식한다. 사람의 키가 큰지 작은지는 다른 사람의 키와 비교를 통해서만 분별되어 인식된다. 이처럼 육식은 비교 분별을 해서 대상을 안다고 여긴다.
이렇듯 육식은 대상을 둘로 나눈 뒤에 한 쪽은 좋아하고 다른 쪽은 싫어한다. 좋아하면 애착을 일으키고, 싫어하면 미워하며 거부감을 일으킨다. 좋아서 집착하는 것은 취하고 가지려는 마음이 일어나고, 싫어서 미워지는 것은 버리려는 마음이 일어난다. 이것이 취사간택심(取捨揀擇心)이다. 취하고자 하는데 갖지 못하거나, 버리고 싶은데 버려지지 않을 때 괴롭다. 취사간택심이 곧 괴로움의 원인이다.
육식은 실체성이 없으니 사실 우리가 좋아하거나 싫다고 여기는 모든 것은 내 마음이 만들어낸 허망한 착각일 뿐이다. 모든 대상은 다른 것과의 비교를 통해서만 그렇게 분별 해석되었을 뿐, 그 분별 해석 자체가 허망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분별하고 취사를 하면서도 과도하게 그 분별심과 취사간택심에 사로잡히지는 않을 것이다. 『금강경』의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이란 말처럼, 집착하지 않고 마음을 내게 된다.
육식의 이런 특성을 안다면, ‘내가 안다’고 여기는 대상이 비교 분별을 통해 인식된 허상일 뿐, 실재가 아님을 깨달을 것이다. ‘모를 뿐’이라는 사실이 더 선명해진다.
육식은 대상인 육경을 ‘안다’는 마음인데, 진실은 ‘모를 뿐’이다. 모를 뿐이니, 대상을 분별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대상을 취사간택하는 대신, 무엇이 일어나든 분별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것이다. 이것이 곧 육입처, 육식, 십이처, 십팔계라는 허망한 의식에 휘둘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지혜로운 길이다.
글쓴이 :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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