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 45

온 우주가 마음 안에 들어와 있다

온 우주가 마음 안에 들어와 있다 11. 괴로움은 어디서 오나생각으로 나와 남 분별하지만 생각은 본래의 모습이 아니며실상은 마음에서 펼쳐 보이는 무상한 그림들과 소리일 뿐인생을 살다보면 괴롭고 마음 상하는 일이 누구에게나 있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직장 동료가 나에 대해 험담하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되거나, 시댁이나 처가 식구가 무리한 요구를 반복해서 해 오거나, 나와 분명히 했던 약속을 언제 그런 말을 했냐는 듯 거짓말을 하는 거래처 사람을 만났을 때 뒤에서 한 방 맞은 듯 충격을 받으면서 마음이 괴롭게 된다. 현대사회에 와서는 핸드폰으로 보내온 피싱 문자와 누르지 말아야 하는 사기성 링크를 봤을 때 짜증이 나거나, 아니면 상대방의 얼굴을 보고는 절대로 할 수 없을 것 같은 인신공격의 말들을 온라인상..

초기불교 8정도 수행 중 정정진의 수행

초기불교 8정도 수행 중  정정진의 수행 정정진은 정방편이라고도 부르며 ‘바른 노력’으로 해석될 수 있다. 정정진은 팔정도의 나머지 지분의 실천에 있어 중간에 쉼 없이 게으르지 않는 노력을 행하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중아함경』에서는 “이미 생긴 나쁜 법을 서둘러 없애고, 아직 생하지 않은 나쁜 법을 서둘러 생기지 않게 하고, 아직 생하지 않은 선한 법을 서둘러 생기게 하고, 이미 생한 선법은 물러나지 않도록 머무르게 하는 것”이라고 했고, 『잡아함경』에서는 “꾸준히 힘써 번뇌를 떠나려 하고 부지런하고 조심하여 항상 물러나지 않도록 행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즉 정정진은 꾸준히 힘써 번뇌를 떠나고 부지런하고 조심하여 항상 물러나지 않는 노력을 의미한다. 이는 구체적으로 이미 생긴 나쁜 ..

병을 알고 약을 처방 받고 병이 나으면 처방 받은 약을 버리십시오

병을 알고 약을 처방 받고 병이 나으면 처방 받은 약을 버리십시오 불법은 곧 지혜 하나가 으뜸인데, 왜 부처님께서는 중생을 위해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 자, 비, 희, 사를 찬탄하십니까? 아끼는 자에게는 보시를 찬탄하고, 파계한 자에게는 지계를 찬탄하며, 성내는 자에게는 인욕을 찬탄하고, 게으른 자에게는 정진을 찬탄한다.산란한 마음에는 선정을 찬탄하고, 어리석으면 지혜를 찬탄하며, 어질지 못한 자에게는 자비를 찬탄하고, 분노하면 자비심을 찬탄한다. 이것은 마치 집을 지을 때 기초를 먼저 닦고 그 위에 집을 짓듯,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 등도 마찬가지로 보살행의 근본이 된다. [화엄경 보살문명품]   불법은 오직 한 맛(一味)입니다. 불법은 불이법이어서, 둘로, 셋으로..

초기불교의 8정도 수행 중 정명(正命)의 수행

초기불교의 8정도 수행 중 정명(正命)의 수행 정명은 ‘바른 생활’ ‘바른 생계’, ‘바른 직업’ 등을 의미하고, 그릇된 생활태도를 버리고 정당하고 바른 생활을 정당한 직업과 생계로써 해 나가라는 것이다. 정명은 출가 수행자에게는 바른 생활수단을 의미하고, 재가자에게는 바른 직업을 의미한다. 주로 출가자들이 행해야 할 바른 생활, 바른 생계에 대해 『중아함경』에서는 ‘만족스럽지 못할지라도 여러 가지 축문을 써서 삿된 생활을 존속하지 말라’고 했고, 『맛지마 니까야』에서는 ‘점을 치며 살아가는 것’ 또한 바른 생활수단이 아님을 설하고 있고, 『잡아함경』에서는 ‘정명이란 의복, 음식, 침구, 탕약을 법에 맞게 구하고 법에 맞지 않는 것은 구하지 않는 것’이라고 설하고 있다. 부적을 써 주거나, 점이나 사주,..

평범한 평상시의 마음이 그대로 도였음이 드러나고 깨달음과 일상이 둘이 아니었음이 드러납니다

평범한 평상시의 마음이 그대로 도였음이 드러나고 깨달음과 일상이 둘이 아니었음이 드러납니다 깨닫게 된다고 해서 매 순간 비일상적인 삼매나 신비체험 같은 것이 지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그저 평상시의 마음 이대로 살아갈 뿐입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분들이 견성을 경험한 이후에 그 체험이 사라지고 나면, 다시 예전처럼 평범해진 그 순간을 두려워합니다. 깨달은 것이 아니었나 보다 하고 의심하고 좌절도 하고, 견성 체험의 순간을 그리워하고 다시 견성을 체험하고자 추구하기도 합니다. 이 평범한 순간을 도저히 견디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도가 아니라고, 깨달음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왔다갔다 헤매다가, 문득 지금 이 자리에서 이것이 전부구나 하고 확인(確認)되는 순간이 옵..

초기불교 8정도의 수행 중 정업(正業)의 수행

초기불교 8정도의 수행 중 정업(正業)의 수행 팔정도의 4번째 정업은 바른 행위다. 앞서 설명했듯이, 팔정도를 이 삼업에 대비해 본다면 정사는 의업, 정어는 구업, 정업은 신업을 가리키는 말로 볼 수 있다. 정견이라는 무명이 사라진 바른 견해가 먼저 있고 나면 정사라는 의업이 바로 설 수 있고, 그 다음으로 입으로 짓는 구업과 연이어 몸으로 짓는 정업이 바로 설 수 있는 것과 같은 순서의 이치라 볼 수 있다. 정(正)을 연기, 중도, 무아, 자비로 이해할 수 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정업은 ‘연기’적인 견해와 사유가 바탕이 된 바른 행위를 의미하며,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중도’적인 행위를 의미하고, 실체론적인 집착에 사로잡히지 않는 ‘무아’의 행위이며, 결과적으로 살생과 도둑질, 사음 등의 몸으..

취사간택하지 않고 중도적으로 법문을 듣는다면 결국 깨달을 것이다

취사간택하지 않고 중도적으로 법문을 듣는다면 결국 깨달을 것이다 마치 젖은 뗄나무에 붙은 약한 불이 빨리 꺼지듯이, 부처님 가르침이 있더라도 법문 듣기에 게으른 자는 이와 같다. 나무를 비벼서 불을 피울 때 불이 일어나기도 전에 자주 쉬어 버리면 불씨를 살리지 못하듯, 마음공부에 게으른 자도 마찬가지다' 의사라 할지라도 자신의 병은 못 고치듯, 법문을 많이 듣기만 하고 실행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남의 보물을 세더라도 자신은 반 푼도 없는 것처럼, 법문을 많이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으면 마찬가지다. [화엄경] 보살문명품에서...   법문을 듣기에 게으르고, 법을 가까이 함에 게으르면, 약한 불에 쉽게 꺼는 젖은 뗄나무처럼, 불 나기 전에 나무를 비비다 마는 사람처럼 불씨를 얻지 못합니다. 늘 ..

초기불교 8정도 중 정어(正語)의 수행

초기불교 8정도 중 정어(正語)의 수행 정어는 ‘바른 말’ ‘올바른 언어생활’로 해석될 수 있다. 생각이 현실을 만들어내는 업력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말 또한 힘을 가진 행위다. 의업 즉 생각이 강력한 힘을 가진 업력이라면, 그 의업의 강력한 힘을 현실로 구현하는 첫 번째 기관이 바로 입이고 말이다. 머릿속에서 희미하게 떠도는 생각일 때는 아직 현실을 창조하는 힘을 지니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그 생각이 말로 튀어나오는 순간 그 말은 하나의 강력한 힘을 지닌 업력이 되어 업보를 불러오게 된다. 실제로 인간의 뇌는 소리 내어 말을 하면, 자신이 한 말도 외부에서 입력하는 지시적 정보로 받아들여서 그 방향으로 작업을 한다고 한다. 『식물의 정신세계』에서는 식물도 인간처럼 생각하고, 느끼고, 기뻐하고, 슬퍼하..

반야 지혜의 씨앗, 즉 공의 지혜의 씨앗을 본성이라는 땅에 심어 놓는다면

반야 지혜의 씨앗, 즉 공의 지혜의 씨앗을 본성이라는 땅에 심어 놓는다면 마음 공부를 하면 분명히 공부의 효험이 생깁니다. 아직 깨달음을 확인하지 못하였더라도, 마음 공부를 꾸준히 하다보면, 점점 지금 여기 이 자리에 근접해지고, '그렇지' '그렇지' 하면서 법문과 내 마음이 하나되는 공명을 경험하곤 합니다. 법문이 공감이 되고, 법문 듣는 시간이 평안하고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처음에는 특정 부분에서 이해가 안 되고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있겠지만, 그래도 나도 모르게 자꾸 이 법문에 이끌리게 됩니다. 그러면서 가랑비에 옷 젖듯이 법비에 내 마음이 젖고, 법의 즐거움에 젖어들게 됩니다.이렇게만 하신다면, 당장에 깨닫지 못하더라도, 큰 효험이 있을 것입니다. 대혜종고 스님도 수행자들과 재가불자들에게..

초기불교의 8정도 수행 중, 정사(正思)의 수행

초기불교의 8정도 수행 중, 정사(正思)의 수행 팔정도의 2번째 정사(정思)는 정사유(正思惟) 혹은 정지(正志)라고도 부르며, ‘바른 생각’ ‘바른 뜻’ 혹은 ‘바른 마음가짐’ 정도로 해석된다. 여기에서도 ‘바른’이라는 것은 연기, 중도, 무아,  자비를 의미하는 것으로, 대상에 대해 생각할 때 실체관에 사로잡히지 않고,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중도적인 생각을 의미한다. 또한 사유하되 그 사유에 사로잡히지 않는 함이 없는 생각이다. 즉 생각하되 생각한 바가 없고, 생각이 필요할 때 생각을 사용하지만 그 생각에 구속됨이 없는 생각을 말한다. 마음속에서 좋거나 나쁜 생각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그 생각을 ‘내 생각’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좋은 아이디어가 하나 떠오를 때 ‘내가 똑똑하다’고 여기거나, 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