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불법은 원만하게 통하는 것이다

장백산-1 2015. 8. 3. 12:04

 

 

 

 

 

|몽지와 릴라

   

지공화상 <대승찬>

80. 불법은 원만하게 통하는 것임을알지 못하고  헛되이 글줄을 찾고 글자를 헤아린다.
     不解佛法圓通 徒勞尋行數墨

宇宙 全切를 圓滿하고 充滿하게 貫通해 있는 佛法을 깨닫기 위해서는 그 가운데 가로막히는

障碍가 없어야 합니다. '나'라는 固定不變하는 獨者的인 實體가 있다면 佛法은 그것에 가로막혀

圓滿하고 充滿하게 宇宙 全切를 貫通할 수 없습니다. 오직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主體로서의 '나',

가짜 나, 假我, 自我意識, 分別意識이 本來 圓滿하고 充滿하게 宇宙 全切를 貫通해 있는 佛法의

唯一한 障碍입니다.따라서 佛法에 원만하게 통하려면 먼저 '나' 없는 도리(無我性, 我空, 法空)를

깨달아야 합니다.

바로 지금 여기 이 瞬間 있는 그대의 '나'는 어디 있습니까? 바로 지금 여기 이 瞬間과 그대의

'나'가 分離되어 있습니까? 바로 지금 여기 이 瞬間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이것을 떠나서 그대의

'나'가 따로 존재합니까? '나'가 보고 듣고 느끼고 안다는 分別心도 바로 지금 여기 이 瞬間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作用의 一部 아닙니까? '나'가 있는 게 아니라 '나'가 있다고 아는 이것이 있는

게 아닙니까?

마치 텅~빈 칠판에 '나'라는 글자를 쓴 것과 같습니다. '나'라는 글자는 썼다가 지웠다 할 수 있지만

글자가 드러나는 텅~빈 바탕 칠판은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變함없이 存在하는

칠판보다는 그 위에 드러나는 글자나 모양에 더 관심을 기울이듯, 한 瞬間도 빠짐없이 存在하는

純粹한 意識 그 自體보다는 느낌과 感情, 生覺이라는 形態로 드러난 가짜 나, 假我, 自我意識, 分別

意識, 分別하는 마음에 더 關心을 쏟습니다.

칠판 위에 '이것은 칠판이다'라고 써 놓았지만, 글자만 보고 그 글자가 드러나 있는 背景으로서의

칠판을 實際로 確認하지 못한다면 '이것은 칠판이다'라는 글귀는 아무짝에도 쓸데가 없는 것입니다.

佛法에 관한 온갖 책들을 읽었어도 정작 그 모든 알음알이가 일어났다 사라지는 눈앞의 텅~빈 바탕,

바로 지금 여기 이 瞬間 이 자리의 現存을 깨닫지 못한다면 소중한 시간만 낭비한 셈입니다.

바로 지금 여기 이 瞬間에 보고 있는 이 글자들이 '나'의 안에 있습니까, 밖에 있습니까? (침묵)

바로 지금 여기 이 瞬間 '나'라는 존재의 느낌과 눈앞의 世界가 하나입니까, 둘입니까? (침묵)

바로 지금 여기 이 瞬間 일어나는 '나'의 生覺과 그 生覺을 지켜보는 '나'가 分離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침묵) 앞의 생각이 사라지고 뒤의 생각이 일어나기 전, 그 瞬間 무엇이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