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보리좌에 앉아 계시네
화엄경 여래현상품에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게송이 나옵니다. " 부처님의 몸(법신)은 법계에 충만하시어 일체 중생 앞에 널리 나타나시니 인연 따라 두루 응하지만 항상 보리좌에 앉아 계시네 "
부처님(法)의 몸, 즉 법신(法身)은 이 우주(법계) 곳곳에 계시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법신은 법계에 충만하여 일체 중생 앞에 늘 언제나 법신의 진리를 드러내고 계십니다. 법신은 인연따라 일체 모든 것들에 응해 몸을 나투고 계십니다.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 우리 눈 앞에 보이는 이 일체 모든 것들, 존재들, 현상들, 그 모든 것들이 전부 법신, 진리가 드러나 있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가 부처님의몸, 법신입니다.
다만 우리가 눈앞의 모든 것들에 대해 좋으니 싫으니, 옳으니 그르니 하며 분별하고 시비하기 때문에 분별 시비된 대상으로 보일 뿐이지만, 시비 분별하지만 않으면 세상은 언제나 지금 여기 그대로 무분별의 법신의 드러냄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밖에는 비가 오네요. 새들은 지저귀고, 시계 초침은 재깍거립니다. 이러는 지금 여기에 무슨 문제가 있죠? 아무 일 없이 그저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의 진실이 이렇게 펼쳐져 있을 뿐입니다. 이것은 진실도 아니고, 거짓도 아닙니다. 그저 이러할 뿐, 아무 일 없을 뿐이지요. 분별 이전 자리에서는 늘 이렇게 고요합니다. 적멸(寂滅)! 생각으로 분별심을 일으키지만 않으면, 언제나 우리는 지금 이 순간 깨달음의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항상 이 보리좌에 앉아 계시네가 바로 그것입니다.
항상 보리좌에 앉아 계시네 라는 게송은 부처님의 게송이 아니라, 지금 여기 우리들 눈앞의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드러내 보여주는 게송입니다. 눈에 보이는 이 모든 것들이 그대로 진실이며, 부처님의 몸이 법계에 널리 나타내신 불국토입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삶에는 좋은 일처럼 보이고, 나쁜 일처럼 보이는 일들이 끊임없이 인연 따라 펼쳐지고 사라집니다.
거기에 시비 걸고 분별하지만 않으면, 그 모든 인연이 벌어짐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일이 없습니다. 좋고 나빠 보이는 모든 인연이 벌어지고, 나는 거기에 대응해 화도 내고 웃음도 짓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이 깨달음의 자리, 보리좌에 앉아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분별망상에 시달리며 중생의 자리에 계시나요? 아니면, 분별 이전, 있는 그대로 볼 뿐인 보리좌에 앉아 계십니까?
글쓴이 :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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