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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불교의 팔정도 수행의 의미

장백산-1 2024. 6. 8. 14:04

초기불교의  팔정도 수행의 의미

 

 

팔정도의 수행은 초기불교의 대표적인 실천 수행이며, 중도의 수행을 구체적으로 실천 구현하는 방법을 설한 가르침이다. 『중아함경』에서는 팔정도에 대해 ‘고를 소멸하기 위해서’, ‘무명을 끊기 위해서’ 수행하는 실천임을 설하고 있으며, 『잡아함경』에서는 ‘애욕을 끊기 위하여’, ‘삼독을 끊어 없애기 위하여’, 또 『증일아함경』에서는 ‘생사의 어려움을 건너가기 위하여’ 팔정도를 수행한다고 설하고 있다. 이처럼 팔정도는 부처님 가르침에서 가장 중요한 실천 수행법이라고 할 수 있다.

 

팔정도는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로서 여덟 가지 바른 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팔정도를 처음 접하면서 가장 궁금해 하는 점이 바로 ‘정(正)’이 무엇을 의미하느냐이다.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등을 해야 하는 것은 알겠는데, 그런 말이야 누구인들 못 하겠는가.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이 팔정도야말로 ‘고(괴로움)를 소멸하고, 무명과 애욕과 삼독심을 끊으며, 생사를 건너기 위해’ 실천해야 하는 중요한 수행이라고 하신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팔정도에서는 ‘바른’이라는 수식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팔정도의 정(正)은 중도의 중(中)을 의미한다. 그리고 앞서 설명한 것처럼 중도(中道)는 곧 연기, 무아, 무분별, 자비를 의미한다. 이는 또한 대승불교의 공사상과 무자성과도 같은 의미이다. 부처님께서는 연기법이라는 진리를 이처럼 다양한 방법으로, 다양한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신 것이다.

 

팔정도의 정(正)은 바로 연기, 무아, 중도, 자비를 의미하며, 이는 나아가 무분별, 무자성, 무집착, 공, 무위행 등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이것을 조금 더 쉽게 설명한다면, 그 어떤 개념이나 편견에도 치우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분별없고, 생각으로 해석되지 않은 것을 말한다. 정견은 있는 그대로를 분별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는 견해다. 있는 그대로를 분별 없이 있는 그대로만 정견해 볼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선에서 말하는 입처, 당처의 본래면목을 곧장 바로 보는 견성이다. 선의 직지인심이라는 것도 분별망상을 배제하고 있는 그대로의 마음, 진리, 법을 곧장 가리켜 보이는 것을 뜻한다. 그것이 바로 팔정도요 정견인 것이다. 이처럼 조사선, 간화선을 비롯한 모든 수행법이 바로 중도와 팔정도를 구현해 놓은 수행법이라고 할 수 있다.

 

바르게 생각한다는 정사유 또한 치우침이나 분별 없이, 머무름 없이 생각하는 것이다. 즉 공과 중도, 무집착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니 이는 곧, 마음껏 생각을 하되, 그 생각에 한 치도 머무름이 없이 생각하는 것을 뜻한다. 말하되 말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이 정어이고, 행동하되 한 바가 없는 것이 바로 정업이다. 팔정도는 이처럼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사유하고 노력하고 생활하고 고요히 깨어있는 일거수 일투족에서 그것을 하되, 한 바가 없는 분별 없고 깨어있는 삶을 설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팔정도야말로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 사상인 연기와 중도, 무아와 자비를 실천하는 대표적인 수행법이다. 보통 우리는 바른 견해를 가지고, 바른 생각을 하며, 바른 언어생활을 하는 등의 행위를 ‘수행’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좌선을 하고, 절을 하고, 염불을 하는 것만이 수행이라고 여기곤 한다. 그러나 초기불교의 대표적인 수행법이 팔정도라는 사실은 곧 바르게 보고, 사유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생활하고, 노력하고, 알아차리며, 고요히 하는 것 자체가 모두 낱낱이 중요한 삶 속의 ‘수행’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글쓴이 :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