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 39

이름과 모양을 빼고, 언어와 개념도 빼고, 그저 맨느낌으로

이름과 모양을 빼고, 언어와 개념도 빼고, 그저 맨느낌으로 명상을 흔히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 있음’,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를 알아차림’,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를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 없이 있는 그대로 봄’ 등이라고 합니다. 판단, 분별, 생각을 개입시키지 않고, 그저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를 있는 그대로 경험해 주는 것이지요. 그러나 오래 익숙해진 습관은 계속해서 미세한 생각들을 표면의식으로 쏘아올립니다. 이같은 미세한 생각들을 미세망념이라고도 합니다. 고요히 좌선 자세로 앉아 있으면, 들어오고 나가는 호흡이 알아차려 집니다. 호흡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을 호흡관찰명상, 호흡관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호흡관찰명상 여기에도 미세한 망념은 개입이 됩니다. 호흡을 알아..

되어야만 할 '부처'는 없다

되어야만 할 '부처'는 없다 대부분의 불자들은 지금 여기서 자신이 처한 상황을 어리석은 ‘중생’으로 규정지어놓고, 중생이 부처가 되기 위해서는 수행을 통해 어리석은 무명과 삼독심을 다 없앰으로써 비로소 언젠가 깨달은 완전한 부처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착각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불자들은 언제까지고 끊임없이 수행을 해야 하는 존재이며,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가 아닌 완전한 부처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존재라고 여기고 있다. 사람들은 마음 속에 ‘깨달음이란, 부처가 되는 것이란 이런 것일거야’ 하고 깨달음과 부처에 대한 상을 지어 놓고 그 상에 다가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물론 부처 상을 만들어 놓은 것처럼, 이쪽 차안에는 ‘나’라는, ‘중생’이라는 어리석은 중생의 상, 아상을 만들어 놓게 마..

모든 것은 우리 삶에 이미 완벽하게 허용되고 받아들여지고 있다.

모든 것은 우리 삶에 이미 완벽하게 허용되고 받아들여지고 있다. 모든 삶을 허용하고 받아들이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사실 우리는 매 순간 완벽하게 삶을 허용하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삶을 받아들임은 사람들이 애써서 '해야'하는 일이 아니라, 이미 '허용되고 받아들여지고 '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우리의 본질입니다. 삶 자체가 모든 것을 이미 완벽하게 허용하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좋은 일이든, 싫은 일이든 현실에서 이렇게 이미 허용되고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다만 사람들이 생각으로 이것은 받아들이기 싫고, 저것은 더 많이 받아들이고 싶다고 분별하고 취사간택함으로써, 이미 허용되고 받아들여지고 있는 삶에 대해 사람들 스스로 더 큰 문제를 양산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사실 삶에 대해 그렇게 판단분별 취사..

[질문] 우발적 행위나 의도 없는 행위는 업(業)이 되지 않나요?

[질문] 우발적 행위나 의도 없는 행위는 업(業)이 되지 않나요? [답변] 생각, 말, 행동등의 모든 행위는 그 행위에 따른 결과가 따라옵니다. 다만 유위행(의도가 있는 행위)은 유위의 결과를 불러오고, 무위행(하되 함이 없는 행)은 무위의 결과를 가져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도 특별한 의도 없이 말씀하셨지만 그 말에 따른 결과가 따라오기도 했습니다. 예를들어, 석가모니 부처님께 아리따운 딸을 보여주며 딸을 주겠으니 딸과 결혼해 달라는 부부에게 ‘딸의 아름다운 외모는 똥덩어리와 같으니 똥덩어리가 무슨 집착할 대상이 되겠는가’ 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아무리 부처님께서는 그 부부의 딸를 폄하하거나 상처 줄 의도 없이 말씀하셨을지라도 그 딸은 마음 속에 분노를 품고 훗날 부처님에게 복수를 하게 됩니다. 그러..

말(언어)라는 상에 끄달리지 말라.

말(언어)라는 상에 끄달리지 말라. 내 앞에서 어떤 사람이 나에 대한 욕을 하거나, 듣기 싫은 말을 하거나, 혹은 유난희 자기 잘난척을 할 때 나는 괴롭고 화나고 답답한 마음이 올라올 것이다. 맞붙어 싸우게 될 수도 있고, 공연한 말싸움으로 에너지를 낭비하게도 되고, 사람과의 관계가 자칫 잘못하면 멀어지게 될 수도 있다. 이런 일이 있을 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을까? 왜 사람들은 상대방의 말에 휘둘리는 것일까? 먼저 이같은 상황이 괴로운 것은 왜 그런지 살펴보자. 상대방이 내가 듣기 싫은 말을 했거나, 자기 잘난 척 하는 말을 했다. 아니, 사실 엄밀히 따져보면 듣기 싫은 말을 했다는 것은 전적인 내 판단에 불과하다. 자기 잘난 척 했다는 생각도 그 사람의 말에 대한 나의 판..

평범한 일상이야말로 가장 놀라운 큰 신비다.

평범한 일상이야말로 가장 놀라운 큰 신비다. 앞으로 있을 완벽한 삶, 이상향,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진 그런 삶을 추구하는 동안은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 펼쳐저 있는 완전성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 당신이 경험하고 있는 바로 일상의 그 삶 속에 이미 완전성은 깃들어 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완전성을 확인하기를 원할 때 사람들은 바로 완전성을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언제나 그것은 성공적입니다. 지금 여기 있는 이것 말고 다른 더 좋은 것, 더 놀라운 것, 더 성공적인 것, 더 신비로운 것을 원할 때, 당신은 이미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 평범한 신비, 완전성을 발로 걷어 차게 됩니다. 평범한 일상이야말로 가장 놀라운 큰 신비입니다. 화창하고 푸르른..

중도의 삶에는 지족과 수용이 있다.

중도의 삶에는 지족과 수용이 있다.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은 중도다. 바른 견해, 정견(正見)의 핵심은 양 극단을 포용하는 중도의 견해다. 그런데 중도의 견해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면 그 또한 중도적이지 않은 견해이다. 중도란 양변 가운데 어느 한 쪽만이 옳고 다른 쪽은 그르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양변 모두가 하나의 서로 다른 부분임을 이해하는 것이다. 동전의 앞뒷면처럼 서로 다른 면의 하나임일 뿐, 어느 쪽이 더 좋고 나쁘거나, 옳고 그르지는 않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양쪽 모두가 어느 관점에서는 옳을 수도 있고, 또 다른 측면에서는 그를 수도 있음을 아는 것이다. 인연 따라 어떤 경우에는 이쪽이 다른 경우에는 저쪽이 옳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를 불이 즉 둘이 아니라고도 한다. 서로 다른 두 ..

긍정과 부정 양 극단에서 자유로워지는 마음공부

긍정과 부정 양 극단에서 자유로워지는 마음공부 긍정심리학이 요즘 유행하더군요. 부정적인 것을 없애려고 애쓸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것을 더욱더 확장하고 크게 만들고 주의를 기울이게 되면 긍정적인 것이 확대되어 부정적인 것은 저절로 사라진다는 것이지요. 얼핏 들으면 좋은 말같지만, 여기에 있는 함정도 함께 깨달을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긍정적인 것에 먹이를 주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것을 없애기 위한 방법으로 긍정적인 것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그 내면에는 부정적인 것은 나쁜 것이고 없애야 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올라오면 사람들은 곧장 그 부정적인 생각을 나와 동일시해서 나는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생각은 어디까지나 그저 하나의..

본성은 완벽해 내가 손댈 곳이 없다

본성은 완벽해 내가 손댈 곳이 없다 8. 우리의 본성 본성은 항상 깨어서 밝은 법 태양이 항상 밝은 것과 같아 본성은 인과 초월해 있으니 분별하던 습관 멈춤이 중요 이 공부를 하면서 간단하지만 정말로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 바로 “자기 자신이 깨달으려고 하는지” 아니면 “자신과 상관없이 항상 깨어 있는 본성을 확인하려 하는지”이다. 우리의 본성은 나와 아무런 관계없이 항상 깨어있어서 밝다. 본성은 마치 태양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항상 밝은 것과 같다. 내 노력 여부에 따라 태양이 밝아지거나 어두워지거나 하는 법이 없지 않는가? 하지만 이 이치를 모르면 자신의 노력으로 본성을 밝게 할 수 있다고 믿고 더불어 본성의 깨어있음 까지도 본인의 노력으로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오해한다. 우리의 본성은 이미 완..

내 가족의 죽음일지라도 심지어 내 죽음일지라도 허망한 일일 뿐

내 가족의 죽음일지라도 심지어 내 죽음일지라도 허망한 일일 뿐 가끔 아주 가끔 가족인 자녀의 죽음을 지켜봐야야만 하는 부모의 안타까운 사연을 접하게 됩니다. 이런 때에는 그 슬픔이 쓰나미처럼 부모를 집어삼키기 때문에 어떤 말도 귀에 들리지 않습니다. 저 또한 이런 부모들께 어떤 말씀도 해 드릴 수가 없더군요.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어떤 말도 부모에게 위로가 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대혜서장에 비슷한 일에 처하셨을 때 대혜스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어 함께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편지를 받아보고 5째 아드님이 병으로 죽었음을 알았습니다. 부자의 정은 무한 세월 윤회하는 동안 은혜롭고 자애로운 습기가 흘러든 것입니다. 이런 안타까운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오탁악세 속의 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