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 39

번뇌 망상은 어떻게 생겨나는 것일까?

번뇌 망상은 어떻게 생겨나는 것일까? 달마스님의 사행론에는 다음과 같은 비유가 나온다. “어떤 사람이 자기 스스로 용과 호랑이를 그려놓고 그 그림을 스스로 보고 도리어 스스로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니, 어리석은 사람의 행위도 또한 이 사람과 같다. 알음알이, 분별심으로 칼 산과 칼 숲을 그려놓고 도리어 분별심, 알음알이로 그 그림을 두려워하나니, 만약 두려워함이 없으면 번뇌 망상이 다 없어진다” 나 스스로 용과 호랑이라는 그림을 그려놓고 혹은 귀신을 그려놓고 그것을 스스로 두려워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다. 사실 마음도 이와 같아, 알음알이라는 분별의식으로 칼산과 칼숲을 그린다. 즉 이 무섭고도 날카로운 언제 찔러올지 모르는 수도 없이 많은 세상을 그려놓고 스스로 그린 그 세상을 분별심, 분별의식..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한가한 도인(절학무위한도인)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한가한 도인(절학무위한도인) 증도가에 ‘절학무위한도인 부제망상불구진(絶學無爲閒道人 不除妄想不求眞)’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배움이 끊어진 한가한 도인은 망상도 없애지 않고 참됨도 구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참됨을 취하지도 않고 망상을 버리지도 않는다는 말입니다. 즉 불이법에 흔들림이 없이 확고하다는 말입니다. 마음공부는 특별히 어떤 공부나 수행을 통해 지금 여기 이 자리가 아닌 다른 특별하거나 더 높은 자리라는 목표지점으로 옮겨가는 공부가 아닙니다. 지금 여기 이 자리가 이미 완성된 충만한 자리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공부입니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다만 내 스스로 생각과 망상을 일으켜,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분별할 수 없는 대상세계를 내 잣대를 가지고 해석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정견(正見)으로 세상을 보는 연습을 해 보세요

정견(正見)으로 세상을 보는 연습을 해 보세요 사과의 맛과 귤의 맛을 비교해서 사과는 맛이 없다고 하는 것은 나 혼자 느끼는 비교하는 마음 분별하는 마음일 뿐입니다. 다른 사람은 귤의 맛보다 사과의 맛을 더 좋아할 수도 있으니까요. 이처럼 이것과 저것을 비교해서 이것 보다 저것이 더 좋다거나 나쁘다고 느끼는 마음을 분별심(분별하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분별심이 바로 의식(意識), 식(識)입니다. 즉 식이란 곧 이것과 저것을 비교해서 그 중에 어느 한 쪽을 선택하는 허망한 의식입니다. 식(識)을 허망한 의식이라고 하는 이유는, 식(識)은 나에게 선택되어진 취사간택심일 뿐, 절대적 진실이라고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사과를 보더라도, 사과를 먹더라도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의 사과를 그저 있는 그대로 ..

불안 고통 절망을 버리지 말라

불안 고통 절망을 버리지 말라 많은 사람들은 무언가로 인해 괴로워한다. 어떤 사람은 미워하는 사람 때문에 괴롭고, 또 어떤 이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괴롭고, 어떤 사람은 진급 못할까봐 괴롭고, 어떤 사람은 사랑 받지 못할까봐 괴롭고, 어떤 이는 외로움 때문에 괴롭고, 어떤 자는 인정 받지 못해서 괴롭고, 어떤 사람은 죄책감에 시달려서 괴롭다. 그 어떤 괴로움이 오더라도, 사실은 나를 찾아 온 괴로움, 그 자리에 답은 있다.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딛고 일어나라는 말처럼, 바로 그 괴로움 속에서 답을 찾아야지 그 괴로움이 싫다고 괴로움을 버리고 새로운 행복을 찾거나 기다려서는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번뇌즉보리, 생사즉열반이라 한다. 반야심경에서는 색즉시공이라 한다.. 내가 괴로워하는 바로 그 ..

마음을 쉬고자 하면 그저 그냥 마음을 쉬면 될 뿐이다.

마음을 쉬고자 하면 그저 그냥 마음을 쉬면 될 뿐이다. 마음을 쉬고 싶으면 그저 그냥 마음을 쉬면 될 뿐입니다. 지나가버린 과거의 일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맞는 일이든 옳지 않은 일이든 그런 분별에는 전혀 생각하지 말고, 지금 여기 현재의 일을 줄일 수 있다면 바로 줄여, 한 칼에 두 동강을 내듯 머뭇거리며 의심하지 마십시오. 마음을 쉬고 싶으면 그저 그냥 곧장 지금 여기에서 마음을 쉬면 될 뿐입니다. 분별을 일로 삼는 생각 속에 사로잡히고, 스마트폰 속에서 길을 잃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고 하고 또 해야 하는 끊임없는 이 행위의 지옥, 분별하는 것을 일오 삼는 생각의 지옥 속에 빠져 있어서야 어느 때에 고요한 본바탕을 만날 수 있을까요? 가능하면 바쁜 일상생활 속에서도 틈틈이 시간을 내어 바로..

중단없이 삶을 촬영하는 우주장비

중단없이 삶을 촬영하는 우주장비 사람들 각자가 수백 명 혹은 수천 명 군중 앞에서 연설을 하거나, 유행하는 TV 프로의 주인공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들이 TV로 방영이 된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럴 때 사람들은 함부로 다른 사람들을 대하지도 않을 것이고, 좋지 않은 행동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군생활 또한 ‘진짜사나이’라는 TV 프로에서처럼 군생활 자체를 촬영하면서 하게 된다면, 훨씬 더 강인하게 보이려고 애쓰고, 선임이나 후임에게도 더 잘 하고, 설사 혼을 낸다고 할지라도 양심에 어긋나지 않고, 꼭 필요한 명분이 있을 때만 화도 내게 될 것입니다. ‘아빠 어디가’라는 TV 프로를 보니, 처음에는 자녀들과 함께 놀아주지도 않고 살던 사람들이 TV 프로에 출연하게 되다 보니, 더욱 더 잘 놀아주게 되고, 함께..

4.3항쟁 76년, 역사를 되돌리는 역행자 윤석열에게 전합니다

4.3항쟁 76년, 역사를 되돌리는 역행자 윤석열에게 전합니다 이진호입력 2024. 4. 6. 16:27 완성된 해군기지에 핵잠수함 드나들어... 한반도 평화를 위해 외칩니다 ▲ 2024년 4월 3일, 평화통일시민행동(대표 이진호)이 개최한 열린 수요평화촛불에서 참가자가 한미동맹 추종하는 윤석열을 규탄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 평화통일시민행동 4.3 항쟁이 있은지 76년이 됐습니다. 4.3의 '4'를 죽을'사(死)'자, '3'을 '삶'으로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당시의 상황을 비유한 표현입니다. 76년전 제주의 민중들은 실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누군가는 처참히 학살되었고 또 누군가는 살아남기도 했습니다. 오늘 내 옆에 살아있던 누군가가 내일은 죽어 있을지 알 수 없었던 처..

"전교 1등이 망치는 대한민국"

김누리 교수 "전교 1등이 망치는 대한민국" 임효준입력 2024. 4. 6. 17:03 강연회서 "80% 기억하는 전쟁터 교실" 언급... "경쟁·능력주의·공정 벗어나야" "경쟁교육을 시키지 않으면 어떤 인간이 될까요? 여러분, 궁금하지 않으세요?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만 변합니다. '경쟁교육은 야만이다'라는 이 도발적인 말은 1970년 독일에서 아도르노의 사상이 교육개혁의 모토로 시작되어 54년 후, 오늘날 완전히 새로운 교육으로 성장한 독일인과 세계적으로 존경받은 나라가 된 독일이 되었습니다. '교육혁명'이 우리나라에 필요합니다." ▲ 공공의료 비판 카드뉴스의 역설 지난 2020년 9월 1일 페이스북에 ‘정부와 언론에서는 알려주지 않는 사실: 의사파업을 반대하시는 분들만 풀어보세요’라는 제..

모든 것들을 처음 만나는 순수함

모든 것들을 처음 만나는 순수함 난생 처음 만나는 것처럼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삶을 있는 그대로 체험해 보세요. 사실 어떤 순간도 난생 처음으로 만난 것이 아닌 것은 없습니다. 모든 것이 처음이고, 모든 것이 새롭습니다. 머릿속에서 과거의 경험을 떠올려, 그것과 지금 여기 있는 이것을 비교하는 분별심만 없다면, 지금 여기 있는 이것은 처음 만나는 경험입니다. 과거에 있었던 망상, 생각, 판단, 분별, 기억, 언어, 이름, 꼬리표를 다 떼어버리고, 직접적으로, 무분별로,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의 현실을 만날 수는 없을까요? 그럴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 보겠다는, 단순한 호기심과 모험심을 가져보세요. 이것은 하나의 모험입니다. 태어나서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길이지요. 지금껏 사람들은 과거에 경험..

미래에 대해 모름이라는 진실에 온전히 뿌리내리는 것이 지혜다.

미래에 대해 모름이라는 진실에 온전히 뿌리내리는 것이 지혜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미래를 걱정하고, 두려워한다. 자기가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만들어 놓고, 그 기대와 희망대로 되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걱정하고 두려워할 것은 전혀 없다. 전~혀! 왜 그럴까? 어차피 미래라는 그건 누구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결코 미래에 대해 알 수 없다. 지금 이 순간 다은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데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전혀 결코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은 알 수 있을 것처럼 여긴다. 그것이 바로 중생의 어리석고 허망한 생각이다. 안다고 여기는 어리석음! 그렇다! 아이러니 하게도 모르는 것이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 안다고 여기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