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스님의 날마다 해피엔딩

세상에 대해 '안다'는 생각이 없을 때 세상은 눈부시게 빛난다

장백산-1 2024. 4. 2. 14:40

세상에 대해 '안다'는 생각이 없을 때 세상은 눈부시게 빛난다


사람들은 전혀 새로운 대상에 대해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걸러보고서는 그 대상을 ‘다 안다고 결론짓곤 합니다. 그런데 어떤 대상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라는 사실은 사람들의 삶에 아주 큰 위험을 초래합니다. 이미 아는 경험이라면 애써 다시 경험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지요. 사람들이 절에서 스님의 법문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인데요,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법문하실 때는 어떨까요? 법문이 재미가 없다고 느낍니다. 법문이 새롭지 않고 재미가 없으니 법문에 집중도 못 하고 그렇게 되면 법문에서 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공부든, 진리든 ‘이미 아는 것’이라는 생각이 있으면 그것은 주의를 기울여 듣지 않게 되고, 거기에서 뭔가 새롭게 얻고자 하는 생생한 마음이 들지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여기’라는 매 순간 순간의 현재 상황을 대하는 방식과 관점도 이와 같습니다. 모든 순간의 경험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수많은 경험들 가운데 어떤 비슷한 특정 경험을 끄집어내어 그것과 지금의 상황을 비슷한, 이미 알고 있는, 이미 경험해 본 상황으로 결론을 내린단 말이지요. 이미 아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을 새롭게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경험 하지 않습니다. 매 순간을 대충 대충 넘기고 말지요.

사람들은 매일 세 끼를 똑같이 밥 먹는 일을 반복합니다. 평생 반복해 온 것이니까 그게 전혀 새롭지 않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옛 스님 말에 ‘배고프면 밥 먹는’ 일상이야말로 도(道)라고 했고, 불가에서는 밥 먹는 단순한 일상이 고스란히 최고의 수행의 순간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밥 먹는 일을 ‘이미 수도 없이 경험했고, 그 맛도 다 안다’는 생각이 있으니까 밥 먹는 데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밥을 먹으면서 다른 생각하고, TV를 보거나, 신문을 보고, 망상을 붙잡고 늘어진단 말입니다. 만약에 다 아는 것이라는 생각 없이 식사 시간을 전혀 새로운 마음으로 맞이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전혀 새로운 일을 할 때나 전혀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때날 때는 어때요? 온 감각이 다 깨어나고, 집중을 하게 됩니다. 그것럼 밥 먹을 때도 밥 먹는데 온전히 집중을 하게 되면서 깨어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밥 먹을 때는 오직 밥만 먹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안다’는 착각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합니다. 숭산스님께서 ‘오직 모를 뿐’이라고 하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알고 있다?’ ‘경험했다?’ ‘다 아는 것이다?’ 라는 생각이 바탕이 될 때, 그 현실의 경험은 새로운 것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어떤 과거와 동일한 일을 경험하게 될 지라도 그것은 사실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벌어지는 거지요. 한번 흘러간 강물에는, 한번 목욕한 강물에는 두 번 다시 목욕할 수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새로움 속으로 뛰어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를 깨달음의 길로 이끌 수 있고, 우리를 전혀 새로운 삶의 성숙을 가져오도록 안내해 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새로운 시선으로 일상을 새롭게 바라보세요. 집에 오고 가는 그 길이 매일 똑같은 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매일 바라보던 하늘이 똑같은 하늘이 아니고, 첫 눈도 똑같은 첫 눈이 아니며, 나뭇가지 하나, 꽃 한 송이조차 전혀 새로운 차원의 아름다움과 신성함으로 우리의 마음에 맑은 종소리를 울려 퍼지게 해 줄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평범하던 삶이 날마다 새롭고 눈부신 오늘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비로소 삶이라는 신비와 직접적으로 마주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글쓴이 : 법상